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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어도 김애란의 글이 우리의 구차하고 너덜너덜한 삶에 로또 같은 허황된 희망이라도 좋으니 위안을 주는 것이길 바랐다. 괜찮다고, 삶이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고된 길을 쳇바퀴 돌듯 밟아가는 과정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 안에 다정한 위로의 순간들이 있다고. 그런 날들이 우리를 살게 하고, 위로하고, 때론 벅찬 환희를 느끼게도 한다고. 그러니, 좀 더 힘을 내어보자고 손내밀어주길 바랐다.

그녀의 전작들을 좋아했던 이유도 팍팍하고 고단한 삶에서 유머와 희망을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정한 시선을 거두고 좀 더 현실을 파헤쳐보고 싶었던 듯하다.

우리가 꿈꿨던 더 나은 삶에서 점점 비껴가기만 하는 좌절의 날들,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해야 하는 우리의 위치와 현재에 대해. 비행기는 타보지도 못했지만 비행기가 쓸고간 흔적을 가리키며 한 번쯤 빙긋이 웃는 삶. 내 것이길 바라진 않았는데, 어느새 내 것이 되어버린 남루한 일상.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

 

어릴 땐 누구나 자라서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될 것 같은, 그렇지는 않아도 좋은 집에 좋은 차를 굴리며 자기 일에 만족하는 삶을 꿈꾼다. 하지만 20대를 통과해 서른을 지나며 깨닫게 되는 현실. 삶은 그렇게 녹록하지도 환상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겨우 이런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비행운>에 나오는 인물들은 누구 하나 만족스럽지 않다. 재개발 지역의 소음과 벌레에 거의 노이로제 상태가 되었지만 이사 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며 출산을 준비하는 임산부이거나, 체불임금 시위를 하다 아버지가 죽고 철거 아파트에 단둘이 남은 모자이거나, 빚은 쌓이고 취업은 되지 않던 중에 만난 옛날 애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일자리가 다단계, 그속에서 헛된 희망을 부여잡고 버티다가 결국 옛날 제자를 끌어다놓고 자기가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던 서른의 여자이거나....택시를 몰고, 공항 청소부 일을 하고, 자신을 예쁘게 꾸며 좀 더 나은 삶으로 가려고 발버둥쳐도 이상하게 더 나빠지기만 할 뿐 더 나아지지 않는 고단한 삶. 꿈속에서조차 폐지 줍는 할머니를 보고 울컥하는 삶.

왠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있고, 빽 있는 게 최고야, 라고 외치고 싶어지는 기분. 지금 한국의 현실 그대로를 본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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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어디. 언제나 '어디'가 중요하다. 그걸 알아야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다고. 그녀는 '짜이날'이라는 단어를 잊지 말라 했다. 그 말이 당신을 원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고. 그다음, 그곳에 어떻게 갈지는 당신이 정하면 된다고. 뜻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길 읺은 나그네에게 친절하다고. 그러니 외지에 나가선 대답하는 것보다 질문할 줄 아는 용기가 중요하다고. -1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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