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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2008년 11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일본에 살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한국에 돌아온 것이지요.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지진 대피 훈련을 받기 때문에 지진이 일어나면 아주 신속하고 차분하게 대피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 친구에게 지진이 나면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책상 밑으로 숨는다"고 말하지요. 어린이집에서 안전 훈련을 받고 있는 우리집 꼬맹이도 "머리에 손을 올리고 요렇게 앉아요"라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친구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나오더군요. "窓を開けるの." 

뭐라고?! 책상 밑으로 숨는 게 아니라 창문을 연다고? 땅이 좌우로 흔들리는 가벼운 지진 같은 경우에는 건물이 무너질 염려가 없지만, 땅이 위아래로 움직여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질 염려가 있는 지진의 경우, '탈출로 확보'가 가장 우선시돼야 합니다. 건물이 뒤틀린 상태에서 창문이나 문이 닫혀 있는 경우 탈출로가 막혀 살아 있어도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이런 사실은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이 될 때까지 사실 전 '지진'이라는 것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었어요. 지진이 흔한 일본에 살면서 말이지요. 오후 3시쯤 장을 보기 위해 집에서 나왔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도 마트가 있었지만 좀더 싼 마트를 가려고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몸이 기우뚱하는 것 같더니 어지러움증이 일었습니다. 아, 왜 이러지? 하고 다시 걷는데 아.... 이건 어지러운 게 아니라 땅이 흔들리는 거였습니다! 때마침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가고 있었는데, 문득 비상시에 새들을 따라가면 산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더군요. 새들이 가는 방향을 향해 냅다 뛰었습니다! 뛰다보니 가까운 마트 앞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서 있더군요. 일단 그쪽으로 가서 같이 대기했어요. 마트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이 지진을 느끼고 바깥으로 대피한 상황이었습니다. 지진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니 옆에 있으면 살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ㅎㅎㅎ 잠시 대기해도 별일이 없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시 마트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제 괜찮은가 보다 생각했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전 '여진'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이날부터 다음날까지 수시로 땅이 흔들릴 거라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태평하게 신랑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연결되지 않습니다. 몇 번을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자 슬슬 불안해지더군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집에 갔는데!!!! 문을 열자마자 말문이 막혔어요. 떨어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있었거든요. 이때 생각보다 큰 지진이 났다는 실감이 나더군요. 그때부터 한국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신랑과는 계속 전화 연결이 안 되고, 집에 있기는 무서워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일단 뉴스를 통해 스이도바시에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신랑의 안전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근데 정말 여진이란 게 무섭더군요. 신발 가게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신발이 살짝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응? 뭐지? 이런 순간 전봇대가 좌우로 흔들립니다. 정말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지금 당장 전봇대가 날 덮칠 것만 같고.... 너무 무서웠어요. 신랑과 전화 연결이 된 건 대략 6시쯤. 저흰 둘 다 2G폰을 쓰고 있었는데 이때 스마트폰을 쓰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카톡으로 연락이 가능했다고 하더라구요.

신랑은 제가 혼자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집에 와야 한다는 생각에 걸어서 집에 오게 되지요. 버스나 전철 등이 운행을 멈췄기 때문에 같은 동네 사는 형님의 스마트폰에 의지해 집까지 걸어옵니다. 6시쯤 이케부쿠로에 있었는데 4시간 걸어 와라비까지 (중간에 다리도 건넜다고 하더군요.) 걸어옵니다.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본인도 놀랐구 저도 놀랐구요. ㅎ

신랑은 8층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건물이 흔들리자 대형에어컨이 한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흔들림이 진정되어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청소부 아주머니가 철문을 꽈악 붙잡고 있었다고 해요. 지진 대피 훈련을 수십 년간 받아온 일본 사람이 가장 먼저 취한 행동은 '문을 연다'였던 거지요. 생각해보세요. 8층 건물에서 탈출구가 막혀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대피를 할 수 있을까요?

아무튼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거쳐 저희는 한국행을 결정합니다. 지진도 무서웠지만 방사능은 더 무서웠거든요. 매일 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방사능수치를 확인하고 먹는 물, 설거지, 세수, 양치하는 물은 전부 생수를 사용했어요. 쓰나미가 덮치는 순간을 포착한 방송을 보면서 자연재해의 무서움도 다시 한번 확인했구요. 제가 있던 곳은 사이타마 현이었는데 그때 제가 경험한 지진 강도가 5.8 정도 였어요, 후쿠시마 지진강도가 9.0이었다고 해요. 5.8도 이렇게 무서운데 9.0은....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지진이 난 며칠간은 여진이 자주 일어나서 한동안 땅이 흔들리지 않아도 흔들리는 착각이 들어서 땅위에 있는데 배를 탄 느낌이었어요. 늘 든든하게 나를 지탱하고 있던 기반인 땅이 갑자기 흔들린다는 느낌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아마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이제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죠. 재난문자만 보낼 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지진 대피 요령을 가르쳐줘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내진설계에 힘써야하겠구요. 혹시라도 지진을 경험한다면 '탈출로 확보'를 꼭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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