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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서 아이의 친구를 만나다

어제 놀이터에 갔다가 아이의 어린이집 친구를 만났다. 한 달 전쯤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했을 때 원인을 하나하나 짚어가다가 이름이 거론된 친구였다. 선생님 몰래 꼬집고 때린다고 했다. 선생님의 중재로 화해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걸로 알고 있었다. 우리 아이는 개미집을 드나드는 개미들을 관찰하고 싶은데 친구는 같이 놀자고 성화다. 남자어른으로 치면 딱 상남자 타입이라고나 할까. 우리 아이가 좋아서, 같이 놀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우리 아이의 기분 같은 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키도 한참이나 큰 녀석이 억지로 끌어안으며 놀자고 한다. 우리 아이는 표정이 어둡다, 싫다고 말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끌려가지도 않는다. 그래, 우리 아이는 그런 아이이다. "지금은 개미 보고 싶대. 조금 있다가 같이 놀면 어떨까?" 알았다고 하더니 저쪽으로 가서 소리지른다. "딱 10분만이야! 10분 있다가 같이 놀자!" 10분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는 녀석이. 

아이가 이 친구랑 노는 게 싫은 건지, 단순히 개미를 보고 싶어서 같이 놀기가 싫은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우리 아이가 집에 가겠다고 한다. 친구가 달려오길래 오늘은 집에 갈 거라 내일 어린이집에서 같이 놀라고 얘기했더니 알았다고 한다. 그러더니 자기 엄마한테 쪼르르 달려가 이른다. "엄마, **가 나랑 안 놀아줘!!!" 음, 그래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구나. 저렇게 바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저 아이가 조금은 부럽다.

집에 가면서 아이와 이야기해보니 같이 노는 게 싫은 게 아니라, 팔을 잡아끌고 억지로 안으면서 아프게 하는 게 싫다고 한다. "그러면 싫다고 거절해도 돼!" 지금부터는 연습이다. "**가 팔을 잡으면서 같이 놀자고 하면 먼저 팔을 뿌리쳐. 그러곤 이렇게 말해. 아프니까 잡아당기지 말고 얘기해!" "그리고 같이 놀기 싫은데 놀자고 하면, '지금은 이게 더 재밌어. 다음에 같이 놀자' 이렇게 말하는 거야." 반복 또 반복. 아이는 놀이처럼 여겼는지 재밌어 한다.


어린이집이 가기 싫었던 이유

아... 이제 알 것 같다. 2년 동안 다니던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처음 이 어린이집에 왔을 땐 아이는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안전하지만 조금 심심했던 가정형 어린이집과 달리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배운다고 하니 너무 재미있어 했다. 활달하지만 부끄러움이 많고 낯도 가리는 아이라서 적응하기 힘들어할까봐 무척 걱정했는데, 그런 나의 우려와 달리 아이는 너무 즐겁게 어린이집을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어린이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어린이집을 가기 싫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애정표현도 잘하고 즐겁고 좋은 것은 잘 이야기하지만 뭔가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아이에게 원인을 밝혀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는 그 전날 영어시간에 울었다고, 수첩에 적혀 있었다. 선생님께도 이유를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이 말로는 다들 아는 건데 자기만 몰라서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보고싶어서 가기 싫다고도 했다. 이제 엄마가 일하지 않는 걸 아는건지 부쩍 어리광이 늘었다. 그 후로도 이유들은 있었다. 친구가 꼬집고 때린다고도 했고, 영어가 재미없다고도 했고, 버섯이 먹기 싫다고도 했다. 아마 그 모든것들이 총체적으로 아이의 마음에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아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좀 짐작이 된다. 전의 어린이집에서는 7명의 친구들이 생활했는데 특별히 튀는 친구가 없이 다들 무난하게 잘 지냈다. 특별히 친하게 쿵짝이 잘맞는 단짝친구도 있었고. 이곳에서도 친해진 친구들은 있었지만, 들어보면 나름 개성들이 있다. 게다가 15명. 싫다는 표현을 못 하는 우리 아이에겐 아마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 적응하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새 직장이 무척 흥미로웠으나 그 시스템에 익숙해지니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왔던 스트레스가 폭발한 것이다. 그래, 어른들도 하기 힘든 사회생활이다. 그전에는 다행스럽게도 순한 친구들만 있었지만, 여기엔 싫은 친구도, 같이 놀기 싫은 친구도 있다. 갈등이 생기면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해야 하는데 입 꾹 다물고 참으니 마음에 병이 올 수밖에. 그런데 너무도 이해가 가는 거다. 나도 그런 타입의 사람이라서. 어떤 일이 생겼을 때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있다가 집에 와서는 '이렇게 말할걸, 저렇게 말할거' 후회하는 타입. 막상 그 순간에는 그냥 입이 떼어지지 않아 당하고만 있는 타입 말이다.


등원거부를 통해 더 많이 이해하게 된 아이의 마음

내가 아무리 연습을 시킨다고 해서 아이가 당장 "노"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원하지 않을 땐 거절해도 된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싫으면 거절해도 되고, 모든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지 않아도 되고, 모든 사람이 너를 좋아할 수도 없다. 냉혹한 현실세계를 그대로 이야기해주는 것이 낫다. 모든 친구와 잘 지내는 데 쓸 데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친구과 더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지 거기에 에너지를 쏟도록 도와주고 싶다. 지금 당장은 "싫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기만 할지라도 부모가 지속적으로 지지해준다면 초등학교 고학년쯤에는 싫다고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힘들고 서툰 마음을 '등원거부'라는 형식으로 표현해줘서 참 다행이다. 어쨌든 아이가 왜 그런지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도 아이도 많이 성장했고, 앞으로는 좀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한정된 학습이나 지식이 아닌, 삶을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서툰 인간이서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아이는 조금은 덜 겪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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