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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책표지



모모요는 보통 할머니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무레 요코의 에세이집입니다. '모모요'는 무레 요코의 외할머니입니다. 아흔 살의 노인이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허리는 굽고 눈은 침침하고 행동은 굼뜨고... 뭔가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지 않나요? 모모요는 아주 대단한 할머니예요. 외삼촌 내외가 손을 내젓을 정도로 활기가 넘치고, 취향이 확고하며,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은 할머니입니다. 도쿄에 와서 자신히 하고 싶은 위시리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하는 모모요의 모습은 흡사 생기발랄한 스무 살 대학생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우에노 공원의 판다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노인흉내(?)를 내거나 디즈니랜드에 가서 이걸 탈까 저걸 탈까 의욕적으로 움직이는 모모요를 보고 있노라면 여지껏 아흔 해를 살아온 노인이 저렇게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데, 고작 아흔의 반도 살지 못한 내가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디즈니랜드에도 노인은 있었다. 그러나 모두 천천히 걸으며 그 분위기를 즐겼다. 하지만 모모요는 그들에 비해 행동범위가 아주 넓었다. 다른 노인이 열 걸음 걷는 사이, 그 배는 예사로 걸었다. 아직 뭐 더 재미있는 거 없나 하고 눈을 반짝거리는 모모요의 등뒤에서 엄마는 버스 출발 시각을 확인했다. 일찌감치 버스로 돌아가,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잡담이나 할 줄 알았다. 엄마가 노인들과 같이 관광버스를 탔을 때, 노인들은 대개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올까 싶을 정도로 일찌감치 구경을 마무리하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이것은 모모요도 예외는 아닐 줄 알았다.

"엄마, 이제 버스로 돌아가요."

엄마의 말에 모모요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다섯시니까, 슬슬......"

선물 살 시간도 필요하고, 하면서 엄마는 출구를 향해 가려고 했다. 그 순간, 모모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냐. 좋았어, 두 개 더 탈 수 있겠다."

그렇게 말하는가 싶더니, 모모요는 초조해하는 엄마를 무시하고 또다시 신데렐라 성을 향해 달려가버렸다. -45~46p


모모요처럼 늙고 싶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이제 살아갈 날보다 살이온 날이 많다는 건 어쩌면 남은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혹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 나이에 무슨......"으로 대표되지요. 뭔가에 호기심을 갖고, 욕심을 내기에 나는 너무 늙었다,고 말입니다. 제가 가끔 생각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요. 어떤 노인이 60에 은퇴를 했다고 합니다. 이제나 저제나 죽을 날만 기다렸는데, 70이 되고, 80이 되고, 90이 됩니다. 아흔이 된 노인은 깨닫습니다. 30년이면 뭐라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말이지요. "죽을 날 받아놓고 무슨...."을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산다"라고 바꾼다면 남은 인생은 얼마나 멋질까요? 모모요의 존재감은 대단합니다. 노인이라고 자신을 낮추지 않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보면 '너무나 갖고 싶다는 광선'을 내뿜습니다. 며느리를 봤으니 편하게 지내겠다고 하지 않고 쉰이 넘어 공장으로 일을 하러 다녔습니다. 디즈니랜드에서 젊은이들이 꼭 타봐야 한다는 건 자신도 타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도 없는 말로 자신을 우아한 어르신으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모모요는 기쁨도 즐거움도 솔직하게 표현한다. 화가 났을 때는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짓는다. 슬픈 모습은 거의 없는 것도 좋다. 자랑일지 모르지만, 할머니 덕분에 '언제나 생글생글 웃는 인격자 노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싫은 것은 확실히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노인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249~250p


나이에 갇혀 지낸다면 나이는 내 삶의 감옥이 됩니다. 하지만 나이에 상관없이 '나 자신으로 산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게 되겠지요.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작가의 외할머니 얘기라고 하니까 더 가슴이 뜁니다. 나도 저렇게, 당당하고 호기심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생각, 가끔 삶에 길들여져 무기력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모모요를 떠올리며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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