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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미투는 안희정 전지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차기 대선주자로 각광받았던 사람이고,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는데 저 사람마저 가해자라니. 하지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건 단지 안희정 전지사가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서의 고백이 어딘가 모르게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냥 불륜이 아니냐고, 왜 거절하지 못했느냐고, 한 번이면 그렇다치더라도 어떻게 여러 번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놔둘 수가 있냐고. 나 또한 그녀의 편에 서서 응원해줘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이는 '그루밍'

그런데 <어쩌다 어른>에 나온 손경이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어쩌면 안희정 전지사의 비서는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여 성폭력을 용이하게 하거나 은폐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르고, 특별히 잘해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으며 성적인 관계로 만들어나간다. 가해자의 덫에 걸린 피해자는 고립되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사과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는 수학여행에서 친구들이 강제로 바지를 벗기고 사진촬영을 당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이야기다.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형식적인 사과를 받았지만 자기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고. 왜 자기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사과를 하면 다냐고. 진심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그 아이는 수학여행 이후 자는 내내 바지를 쥐고 잔다고 했다. 꿈을 꾼다고 했다. 가해자 아니가 나와서 무릎 꿇고 사과를 했지만 그 아이는 반아이들 전부 다 가해자라고 했다. 왜 너희들은 사과 안 해? 아이는 꿈을 꾸게 되지 않으면 그때 사과를 받겠다고 했다.
아이가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나왔던 건 두 목소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때 들렸던 목소리. "그러면 안돼!" "하지마!" 손경이 강사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드유라고 했다. 팻말을 드는 게 위드유가 아니다. 직접 개입해서 피해자를 돕는 게 위드유이다.

 

딸 가진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할

방송 내내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다. 딸을 가진 엄마가 되자, 이런 문제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사내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하지만, 정작 사내아이들의 엄마는 내 아이는 남자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게 우리 현실이다.


얼마전 서초구에 있는 유치원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6세 남자아이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부끄러운 놀이'를 시킨 것이다. 팬티를 벗고 성기를 들어올려 보여주는. 뒤늦게 이사실을 안 여자아이의 엄마가 유치원에 항의했지만, 남자아이의 부모 측은 유아기에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유치원 원장의 대응도 소극적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세요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위드유가 아닐까. 술을 따르라고 했을 때 "제가 따르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남자직원, 결재를 받을 때마다 의도적인 손 접촉이 불쾌해서 여직원끼리 단합하여 결재를 받으러 간다든가, 성희롱으로 의심되는 술자리에서 당황하는 동료 대신 촬영을 한다든가 하는. 술취한 손님의 수상한 낌새에 블랙박스를 안쪽으로 돌려 촬영한 택시기사 아저씨 등.

 

성폭력은 성이 아니라, 폭력일 뿐입니다.

 

자꾸 이 말이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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