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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짧은 강연을 하는 테드x유스턴행사에서 한 강연내용을 담은 것입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여성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삼아 글을 쓰는 작가로 이 강연은 유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게다가 비욘세 노래에 피처링되기도 했으며, 스웨덴 고등학생들의 성평등 교육서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이 30분 정도밖에 안 되니 시간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시청해봐도 좋겠습니다. 글로 봐도 공감이 되지만 적당히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강연 스타일이 무척 매력적입니다. 남녀 모두를 위해 세상을 조금 변화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페미니스트란 말에 담긴 부정적 인식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처음으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들었던 것은 열네 살로, 친오빠와도 같았던 오빠의 친구 오콜로마에게서였습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좋은 말이 아닌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 말투가 마치 넌 테러리스트야라고 하는 것 같았거든요. 2003 <보랏빛 히비스커스>라는 책이 나왔을 때 한 저널리스트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페미니즘적이라고 한다면서 절대로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페미니스트란 남편을 얻지 못해서 불행한 여자라구요.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행복한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합니다. 이번에는 나이지리아 여성 학자가 당신이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서구의 책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이제는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릅니다. 친구가 페미니스트는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해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불렀고,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합니다. 페미니스트란 말에 얼마나 부정적 함의가 많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반복된 경험이 무서운 이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초등학교 때 시험을 쳐서 1등을 하면 반장으로 임명하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열심히 공부하여 제일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반복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거듭 목격하면, 결국 그 일이 정상이 됩니다. 만일 남자아이만 계속해서 반장이 되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라도 반장은 남자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남자들만 계속해서 회사의 사장이 되는 것을 목격하면, 차츰 우리는 남자만 사장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됩니다.” (16p)

과거에는 육체적 힘이 생존에 가장 중요한 자질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게 합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세상은 달라졌습니다. 육체적 힘이 강하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기에 알맞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화했으나, 젠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진화되지 못했죠.



 

이제 우리 딸들과 아들들을 다르게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남자를 기쁘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가르치지만, 거꾸로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자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공격적이거나 터프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같은 행동을 한 남자아이들에겐 칭찬을 해줍니다. 우리가 지금 남자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은 그 아이들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남자아이들이 더 강해지고 단단해져야 한다면서 그들의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으니까요.

오늘날 젠더의 문제는 우리가 각자 어떤 사람인지를 깨닫도록 돕는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만 하는지를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37p)

 

말의 폭력

결혼에 있어서 협력의 말보단 지배의 말이 많이 쓰입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존중이란 말을 쓰지만 남성이 여성에게 있어서는 거의 쓰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랬어라고 말할 땐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을 때이지만, 여자들이 이 말을 쓸 땐 직장과 경력, 꿈을 포기했을 때입니다.

 

진정한 페미니스트란

오래전 사전을 찾아보았을 때,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모든 성별이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평등하다고 믿는 사람. 남자든 여자든 오늘날의 젠더에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페미니스입니다.

문화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문화를 만듭니다. 만일 여자도 온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정말 우리 문화에 없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문화가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만들 수 있습니다.” (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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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만들어지고 나오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다룬 <엄마 씨앗 아빠 씨앗> 남녀 차이를 설명한 <나는 여자, 동생은 남자>

 

아이들이 서너 살쯤 되면 남녀 차이에 대해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다섯 살인 저희 딸아이도아빠는 남자야?” “여자도 서서 오줌 있어?”라고 질문하는 엄마와 아빠의 차이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어쩌다가 샤워를 같이하면 가슴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하고, 아빠랑 같이 놀다가 아빠 고추를 만져보기도 하고 말이죠. 어른이 하면 징그럽고 부끄러울 일이 아이와 함께하면 재미있는 놀이가 됩니다.

 

학교에서 형식적으로 비디오를 틀어주고 끝내버린, 교육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성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와 달리 아이들은 제대로 성교육을 받고, 성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면서 자랐으면 합니다.

 

특히 손경이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외국에서는 생식기가 있는 인형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성교육을 한다고 합니다. 귀여운 남자 인형과 여자 인형의 하의를 벗기면 생식기가 표현되어 있고, 차별을 두지 않기 위해 다인종, 장애인 인형들도 있습니다. 그런 인형들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남자의 성기는 음경, 여자의 성기는 음순이라고 가르쳐줄 있는 거죠. 임산부 인형을 통해 자연스레 아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있게 하기도 합니다. 게스트로 나왔던 최할리가 저런 인형이 있다는 알았다면 도움이 됐을 거라면서 아쉬워하기도 했죠. 어쩌면 올바른 성교육이란 정확한 명칭을 가르쳐주고, 그것의 원래 기능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내가 원할 선택할 있도록 하는 교육이 아닌가 싶습니다.

 

<엄마 씨앗 아빠 씨앗> <나는 여자, 동생은 남자> 성격이 다른 성교육책입니다. <엄마 씨앗 아빠 씨앗> 아이가 만들어지는 다양한 과정에 대해 다룬 사실적인 그림책이라면, <나는 여자, 동생은 남자> 여자인 나와 남자인 남동생의 신체적 특성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는 책입니다. <엄마 씨앗> 일반적인 임신 과정도 다루지만 아기가 질을 통해 나오지 못했을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인공수정과 시험관에 대해서도 다룹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아기 씨가 만나는 과정을 에둘러 말하지 않고 사실적인 그림으로 설명해준다는 겁니다. 어른인 우리는 보기 민망할 있어도 아이는 생각 없이 받아들이더군요. 아기가 만들어지고 나올 때를 설명하면서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오는데 일상에서 단어를 별로 일이 없던 저는 괜히 목소리가 작아지고 땀이 삐질삐질 나오던데, 막상 아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더라구요. 사실 그게 부끄러운 단어는 아닌데, 성에 대한 것을 드러내 말하지 않았던 저로는 의연하게 읽어주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설명을 해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저도 익숙해질 필요가 있는 같습니다.

 

이에 비해 <나는 여자> 쉽게 접근할 있는 그림책입니다. 남동생이 누나를 따라 앉아서 쉬를 하는 장면이나 같이 목욕을 하다가 자연스레 나와 남동생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목은 누구나 번쯤 경험해볼 만한 일입니다. 남녀가 성장하면서 신체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고, 엄마처럼 아빠처럼 크면 아이를 만들 있는 소중한 몸이 된다는 알려줍니다. 그렇습니다, 성은 부끄러운 아니라 소중한 것이라는 , 남녀의 성기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어른인 저도 새삼 깨닫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종류의 책을 읽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소에 부모들이 관심을 갖고 아이의 급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지 않기 위해서 읽어두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부모가 당황하고 어색해한다면 아이도 은연중에 이런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요.

 

손경이 강사님의 강의를 듣다가 반성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강사님이 인형에게 성기가 달려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팬티를 벗길 인형에게 양해를 구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지금 팬티 벗겨도 될까?”라고 말입니다. 아이의 옷을 벗길 때도 지금 옷을 벗겨도 되겠냐고 물어보라는 거죠. 아무리 부모라도 아이의 옷을 함부로 벗기는 수치심을 있는 잘못된 행동이지요.

 

<엄마 씨앗>에서 아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엄마 입으로 나올까? 아빠가 부르면 귀에서 나올까? 기침할 나올까? 엉덩이에서 나올까?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있는 귀여운 상상이죠. 하지만 커가면서 점점 궁금해할 테고, 그럴 이런 책들을 활용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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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사전> <한국의 부자들(한상복)>을 바탕으로 허영만 작가가 그려낸 만화책이다. 읽다 보면 의아한 장면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가 실천해볼 만한 내용이다. 특히 부자들이 쉽게 를 얻는 것이 아닌, 나름의 원칙과 노력, 행동이 바탕이 되어서 얻은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편에서는 20가지 노하우를 다룬다.

 

한상복 씨의 <한국의 부자들>에서 제시하는 돈을 모으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수입의 절반을 무조건 저금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공부가 따로 없고, 무조건 안 쓰고 안 보고 안 먹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을 참고 견디면 5년치 월급이 고스란히 남는다. 간단하지만 무섭고 확실한 계산이다.

-허영만

 

 

   부자 소질 테스트

1.     TV홈쇼핑을 이용해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 직접 가는 편이다.

2.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목돈을 만들기 위해 저축한다.

3.     수입의 50% 이상을 저축하고 있다.

4.     물건을 살 때 세 번 이상 생각한다.

5.     물건을 살 때 반드시 깎으려 한다.

6.     좋은 차로 바꾼 친구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7.     돈 많은 사람이 돈을 쓰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8.     한 해에 내가 낸 세금(원천징수 등)이 얼마인지 알고 있다.

9.     종합소득세를 내고 있다.

10.  세금에 대한 상식이 있으며 절세하는 법을 알고 있다.

11.  시중 은행의 이자율이 몇 %인지 알고 있다.

12.  절약이 몸에 밴 부모 밑에서 자랐고, 부모 생각에 동의한다.

13.  돈을 열심히 버는 목적은 가정의 행복과 건강이다.

14.  돈을 아끼고 열심히 모으는 배우자와 함께 산다.

15.  투자에 밝은 친구 혹은 부자 이웃이 있다.

16.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17.  돈을 아끼는 이유는 항상 아껴쓰는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18.  남들로부터 성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19.  한 번 세운 원칙은 꼭 지키는 편이다.

20.  주식 투자 시 기대 수익률은 20~30%가 적당하다. 

 

 

부자 소질 테스트 결과

*17개 이상: 당신은 이미 부자다. 이 책을 볼 필요가 없다.

10~16: 상당한 소질을 갖고 있다. 부자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5~9: 이제 부자로서의 삶에 눈뜨는 단계다. 부자를 연구하고, 실천하라.

5개 미만: 부자로 가는 길과 반대로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다. 

 

 

우리는 흔히 부자들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집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많은 집을 소유하고 월세를 받아먹는다고, 돈을 많이 벌면 그만큼 세금을 내야지 세금을 적게 낸다고, 다만 운이 좋아서 부자가 된 것뿐이라고. 하지만 여기 나오는 사람들처럼 일찍 일어나 하루를 계획하고 한번 세운 원칙은 철저히 지키고, ‘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일단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내게도 부자가 되는 일은 시간 문제일 것이다.



 

 부자사전 1 겨울이 오기 전에 양털을 깎아라

 

영광의 순간을 경험하고 싶다면 과감해져야 한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어정쩡한 삶을 산 이들보다 훌륭하다.”

-테어도어 루스벨트-

 

뉴질랜드에서는 겨울 오기 직전에 양털을 깎는다. 털을 깎지 않은 양은 털만 믿고 있다가 얼어죽고, 털을 깎은 양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기 때문이다. 부자들도 추운 겨울을 견디고 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빚을 얻어 투자한다. 부자들에게는 양털 깎기에 해당하는 셈이다. 부자들은 부채의 부담이 생활화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100명의 부자에게 물었을 때 현재 빚이 없는 사람은 있지만, 한 번도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부자들은 좋은 기회가 오면 빚을 내서라도 달려든다. 다만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사전 2 주위에 열성 팬을 만들어라

 

베푼 만큼 돌아온다.

안 돌아와도 어쩔 수 없고.”

-반승섭(육류 유통업)-

 

비즈니스와 연애는 같다. 대부분은 접근하기 조차 어렵다. 엉겁결에 대답이 나오도록 작전을 짜야 한다. 만나기 전에 상대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파악하고 취미로 대화를 이어나간다. 본격적 사업 얘기는 다음으로 넘어간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만나다 보면 비즈니스로 연결된다. 성사된 후에는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여줘야 관계가 지속된다. 부자들은 믿을 만한 팬들을 많이 만든다.

 

 부자사전 3 신용만이 살 길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재미 없어 하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 못 봤다.”

-데일 카네기-

 

성공한 상인들은 수완보다 성실과 신용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울 상공회의소가 남대문과 동대문의 의류 상인 225명을 대상으로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신용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신용을 얻기 위해서는 손님의 입장이 되어 성실하게 대해야 한다. 성실처럼 평범하지만 위력적인 장사 밑천은 없다.

 

 부자사전 4 꿈을 키워라

 

줄곧 내 인생이 얼마짜리인지 생각해 보았다.

혹시 내 귀중한 인생을 허비하고 있는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인생이란 본전이 생각이 난다.”

-구창범(투자자문사 대표)-

 

끼: 100명의 부자들에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평가가 무엇인지 묻자 74명이 성실하다라고 했고, 15명이 양심적이다라고 했다. 8명은 기본에 충실하다라고 했다. 성실한 가 있어야 기회가 온다.

: 부자 100명 중 86명이 깡이 있다. 부자들은 원칙을 정하면 지키는 것이 습관화됐기 때문에 부자가 됐다. 원칙과 습관으로 무장된 사람은 여기서 끝낼 것인가 더 나아갈 것인지 정확히 판단하여 깡으로 연결할 줄 안다.

: 부자들은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부자들은 신세를 지면 꼭 인사를 한다.

: 부자들은 표정이 여유롭고 밝다. 낙관적이다.

: 부자들은 부를 축적하겠다는 강렬한 꿈을 갖고 있다. 강렬한 집착은 로 현실화된다.

 

 부자사전 5 낙관적인 삶을 살아라

 

나는 일이 안 풀려도 웃는다.

세상을 원망하면 계속 벌을 받을 뿐이다.”

-손길종(대형 음식점 운영)-

 

골프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잘못 친 샷은 금세 잊어버려야 한다. 다음 샷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부자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다음을 노린다. 하지만 낙관적인 입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허황된 꿈을 좇는 눈 가린 낙관론과 냉혹한 현실에 기반을 둔 가정과 추론을 바탕으로 한 눈 뜬 낙관론이다. 제대로 된 낙관은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다.

 

 부자사전 6 누구에게나 미래는 두렵다

 

집안을 일으킬 아이는 똥을 금처럼 아끼고,

집안을 망칠 아이는 돈을 똥처럼 쓴다.”

-명심보감-

 

취재대상 중 최고령자인 박일문 씨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 지상주의자들은 계획성 없이 인생을 즐겨야 한다는 명목으로 돈을 탕진한다.

 

 부자사전 7 독불장군 부자는 없다

 

해롭기만 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

-전상진(유통업)-

 

독불장군 부자는 없다. 부자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부를 이룩하지 못한다. 부자들은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 증권사 직원들은 정보에 우월하지만 내 돈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내 돈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증권회사 객장 직원은 많이 알지만 기회를 잡는 능력은 부족하다. 부자들은 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보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안다.



 

 부자사전 8 부자가 더 큰 부자 된다

 

돈은 물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지만

돈은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허유식(전 증권사 지점장)-

 

부자와의 게임에서 항상 승자는 부자이다. 부자는 안부자를 안다. 대부분이 겪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자들은 안부자들 위에 있으면서 더더욱 부자가 된다.

 

 부자사전 9 이미 늦었다는 말은 없다

 

뉘우치는 정도, 딱 그만큼만 발전한다.”

-이준채(부동산업)-

 

부자 100명 중 42명이 부자와 안부자의 차이점은 돈을 벌 기회를 찾아내는 안목이 있고 없음에 있다고 했다. 회사원인 안부자는 투자한 돈을 계산에 포함시킬 줄 모르지만, 부자는 투자 대비 수익을 계산해낸다. ‘돈 맛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일반인들에게 돈 맛돈 쓰는 맛이지만 부자에게 돈 맛은 돈을 벌고 모으는 맛이다.

부자들은 부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면 집요하게 끝장을 본다.

 

 부자사전 10 월급쟁이 때부터 사장의 눈높이에 맞춰라

 

세상에 내 일이 아닌 것은 없다.

돈을 버는 데는 무관심이 가장 큰 적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 성공한다.”

-손성필(분양 대행업)-

 

샐러리맨이 성공하려면 일찍부터 경영 마인드를 훈련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한계로 작용해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의사나 여성이 타던 차는 사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조심스럽게 타고 다녀서 엔진이 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이다. 사장 마인드로 일한 샐러리맨은 자기 사업을 시작하면 그동안 쌓은 내공을 발휘한다.

 

 부자사전 11 돈 버는 공부 삼각함수보다 어렵다

 

세상에는 많은 시험이 있다.

그러나 부자는 시험 봐서 되는 게 아니다.”

-문지형(전자부품 회사 사장)-

 

명문대 출신은 실리보다는 명분과 허영을 좇기 때문에 부자가 될 가능성이 적고, 현재 위치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어서 기회를 기회로 보지 않는다. 명문대 출신도 돈 버는 공부를 해야 한다. 돈을 버는 것은 삼각함수보다 훨씬 심오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부자사전 12 돈 자랑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아는 것이 있기 마련이고,

모르는 것이 없으면 아는 것이 없기 마련이다.”

-왕부지(명말청초 사상가)-

 

일본에 이런 속담이 있다. “무능한 개는 낮에 짖는다.” 능력이 모자랄수록, 시원찮을수록, 완전하지 않을수록,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는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큰 부자는 자신의 재산이 얼마인지 떠들지 않는다. 부자라는 것을 알리는 것조차 조심한다.

 

 부자사전 13 원칙을 칼처럼 적용하라

 

돈은 기회다.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

사람에 따라 기회가 많고 적을 뿐이다.”

-권영주(의류업)-

돈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원칙이 중요하다. 한 번쯤 원칙을 어길 수 있고 한 번쯤은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 이상 원칙을 어기게 되면 그 원칙은 무너진다.

 

 부자사전 14 한번 온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독하고 모질다는 소리를 수천 번 이상 들어야

부자가 될 자격이 있다.”

-김인철(의사)-

 

부자가 되려면 철저한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한번 기회를 잡으면 최대한 활용한다. 돈 많이 벌면서 존경까지 받을 생각하지 말라.

 

 부자사전 15 부지런함은 기본이다

 

재미를 붙여야 새벽에 눈이 떠진다.

습관이 되면 삶에 힘이 붙는다.”

-신태준(자동차 부품회사 경영)-

 

100명의 부자들 중 67명이 5~6시에 일어났다. 거의 대부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일찍 일어나면 머리가 맑으며 남들보다 시간을 더 쓸 수 있고, 일찍 자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와 에너지를 줄일 수 있다. (어느 책을 보아도 성공한 사람들은 아침형인간이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부자는 일찍 일어나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자수성가한 부자치고 게으른 사람 없다.

 

 부자사전 16 무자비함을 배워라

 

착하게 사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돈 버는 기준이라면 나는 평생 가난뱅이 신세였을 것이다.”

-진성호(상가 임대업)-

 

착하게 살고, 법을 지키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부자가 되는 방법은 아니다. 돈은 최고의 공격수단이다.

 

 부자사전 17 큰손들의 부동산 투자 노하우

 

어떤 면에서 부동산 투기는 필요악이다.

거품이 끼어야 경기가 좋아진다.

투기를 단속하는 정부도 그걸 잘 알고 있다.”

-서형준(임대업)-

 

부자들은 부동산 개발 정보에 능통하기 때문에 개발 계획 발표 전에 손을 댄다. 정보를 얻으면 발품을 팔아 답사를 하고 땅을 매입하는데, 현지인들이 눈치채기 전에 여러 사람들을 내세워 단시간 매입한다. 오래 걸려도 묵묵히 기다린다. 정부 정책의 수를 꾀고 있고, 관련 정보를 공부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절대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건드리지 않는다.

 

 부자사전 18 거꾸로 생각하라

 

별다른 비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가위 낼 때 바위를 내면 되고 바위를 낼 때 보를 내면 된다.”

-성재철(조명매장 운영)-

 

경기 흐름을 알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신문을 보는 것이다. 몇 가지 대표주식을 정해서 날마다 체크한다. 이것으로 증권시장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전국 주요 아파트 시세를 살피면 돈이 쏠려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경매 물건을 보면 각 지역의 시세를 알 수 있다. 재미를 느끼면서 몸에 배게 해야 한다.

신문의 광고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광고가 전에 비해 궁해 보이면 경기 후퇴기이다. 반면 전면 칼라 광고가 눈에 팍팍 띄면 경기가 꼭대기이다.

신문에서 불황이라고 떠들 때 주식을 사고, 개미들이 빚 얻어서 투자하기 시작하면 내리막이 시작된 것이니 팔아야 한다.

주가는 경기 변동에 앞서고 부동산은 경기와 궤를 같이한다. 주가는 경기가 회복되기 전에 오르기 시작하고 호황기에 접어들면 과열 조짐을 보이다가 하락세로 돌아선다. 부자는 늘 먼저 움직이기 때문에 먹을 것이 많다.

 

 부자사전 19 투자에 부화뇌동은 없다

 

하늘만 바라보면서 농사짓는 사람과 물길을 내어놓고 농사짓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많은 수확을 거두겠는가!”

-최충호(저축은행 설립자)-

 

주식투자로 성공하려면 살 때나 팔 때나 귀를 막아야 한다. 부회뇌동했다가는 손실을 보기 쉽다. 주식투자를 하려면 대상 기업의 재무제표화 사업계획서의 타당성 정도는 볼 줄 알아야 한다. 매출과 영업이익, 경상이익, 순이익 등이 1년 전이나 6개월 전에 비해 늘었는지 줄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주식투자의 기본이다.

나쁜 종목은 증권 소식지에 회사 이름 자주 바꾸고, 사업 내용이 툭하면 이랬다 저랬다 하는 회사들이다. 이렇게 쉽게 볼 수 있는 정보조차 보지 않고 남 얘기만 듣고 투자하면 안 된다.

 

 부자사전 20 돈은 머리가 아닌 발로 벌어라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돈을 벌고 싶어 안달을 하면서도 자기 동네 분양사무소도 가보지 않는다.”

-이준수(공인회계사)-

 

다리품을 팔아 돌아다녀 봐야 부동산의 미래를 볼 수 있다. 투자할 돈이 마련된 뒤 부동산에 눈을 돌리면 공부가 덜 된 상태에서 오판을 할 수 있다. 평소에 부동산 쪽에 관심이 있다면 자금이 마련되지 않더라도 공부를 미리 해야 한다. 그래야 투자 목표가 생기고 노력할 수 있다. 부동산 분양 사무소를 몇 번이나 가봤는가? 유리한 금융상품을 알아보러 몇 번이나 금융기관에 들렀는가?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가닥이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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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나온 책이라 이제는 흔히 알고 있는 내용들도 많지만, '부'나 '성공'에 가까워지고 싶다면 꼭 알아야 할 내용이기도 하다. 요즘 자기계발서를 많이 보고 있는데 정말 성공한 사람치고 늦잠 자는 사람이 없다. <생각의 비결>에서 김승호 회장은 하루에 두 번 6시를 맞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남들과 똑같이 게으르고 똑같이 움직여서 성공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긴 하다. 구체적인 방법을 가르쳐준다기보다는 큰 틀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에 마음가짐을 다잡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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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문제를 모두가 함께 해결해나가길 바라며

 

"성폭행을 당한 일에 대해 용기 내어 말했을 때 엄마는 제일 먼저 내게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품위가 단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 책임이 있다는 것이었다. 졸업 작품 프로젝트로 성폭력의 정신적 외상이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일상생활에서 이는 어떻게 다루어질지 토론하던 중 나온 이야기다. 그 밖에도 "어머,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라든가 "그 얘길 듣고 보니 내가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라든가 "예전에는 말 못했는데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반응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 경험담을 책으로 만들었다. 모두가 읽고 공유하도록. 그럼으로써 문제의 근원이 여성의 '존엄성' 부족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피해자가 무시당하지 않고 분명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피해의 생존자들, 나는 그들의 폭로가 일종의 치유 과정이 되길 바랐다. 그리고 방관자들 또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 문제에 관한 조치를 취하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런 일들이 실제 삶에서 매우 흔히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라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분노와 무력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토론에는 힘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꾀하기를 열망한다. 사회는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폭력을 묵인해서는 안 되고 희생자는 자신의 상황을 알려야 한다. 침묵 속에서 홀로 고통당하기보다 함께 이야기할 때 우리는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마리아 스토이안

 

성폭력을 경험한 전세계 남녀의 20가지 이야기

 

이 책은 전세계 남녀가 실제 경험한 폭행과 학대의 현장을 그린책이다. '그래픽노블'이라는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식을 취하고 있다. 도서관에 페미니즘에 관한 다양한 책들을 한켠에 모아두었는데 뭔가 불편해 보이는 여성의 표정과 "그냥 좋게 받아들이세요"라는 저 말에서 이미 어떤 책인지 촉이 왔다. 성희롱에 항의하는 여성들이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아닐까. 책에는 누구나 경험해봤을 대중교통에서의 성추행, 데이트 폭력, 어린아이들이 지인들에게서 당하는 성추행과 성폭력 등 20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중요한 건 '여성만이 피해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피해자가 어린아이거나 여성이지만, 가볍게는 같은 남성으로부터 신체접촉을 강요당하거나 여자친구에게서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여친에게 성폭력을 당하는 남성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전여자친구는 자살협박으로 남자친구를 복종하게 만들었는데, 헤어진 후에도 잠자는 남성의 침대에 알몸으로 들어오거나 계속 협박에 가까운 말들을 남기는 등 도를 넘은 행동을 했다.  하지만 남성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녀를 고발했다면 오히려 내가 비난받았을 게 분명하다."



 

너무도 쉽게 일어나는 일들

 

내가 지하철을 탄 건 오후 2시쯤이었다.

그때 치마 밑으로 손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서로 밀리고 밀치는 만원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 손이 우연한 접촉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지하철이 출발하자마자 네 개도 넘는 손들이 다시 치마 속으로 들어왔다. (9~10p)

 

친구 중에 웬만하면 지하철을 안 타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지하철만 타면 성추행을 당해서 정말 아주 먼 거리가 아니면 버스를 탄다고 했다. 여성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봤을 일이지만, 그 상황에서 도와달라고 소리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떻게든 혼자 버텨보려고, 아마 우연일 거라고, 아니면 빨리 다음 역에서 내려서 이 상황을 피하자고 생각하는 게 다반사이다. <어쩌면 어른>에서 손경이 강사가 태권도장에 다니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났다. 도복을 도장에서 갈아입는 초등학교 여자아이는 학원 버스 안에서 치마 속으로 중학생 오빠의 손이 들어오는 걸 알고 필사적으로 다리를 꼬고 힘을 줬지만 손은 더 깊숙이 들어왔을 뿐이라고 했다. 왜 주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냐고 하자, "엄마가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키는 거랬어요"라고 했단다.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야 하는 거다. 초등학교 아이가 어떻게 자기 몸을 지킬 수가 있겠나.

 

여기 나온 이야기 중 마음 아팠던 건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의 경우이다. 가족끼리 자주 만나게 되어 알게 된 친구가 있었다. 남자애는 "키스하자" "내 거 손으로 만져줘" "입으로 해줘"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협박한다. "안 그러면 너희 아빠한테 혼날걸? 안 그러면 너희 아빠가 불같이 화낼걸?" 말했다면 아빤 분명히 이 상황을 해결해줬을 테지만, 난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한다. 너무 어려서 야단맞는 게 무서웠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성적 폭력을 당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그것이 마음의 큰 얼룩으로 남아 모든 남자를 불신하게 되는 이 과정이 너무 가슴 아프다, 화가 난다.

 

하지만 성인 여성이라고 다르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알게 된 친구가 죽이 잘 맞아 서로의 집까지 왕래하게 된 한 여성, 그러다가 강제로 성폭력을 당하게 되는데 이 남자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 "울지 말고 즐겨라." 더 가관인 것은 결국 둘은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여성은 일방적인 요구에 의한 섹스를 해야 했다. 그리고 모든 관계를 차단당했다. 나중에 헤어졌지만 그 일이 있은 후 그 여성은 5년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학교 다닐 때도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일부러 신체접촉을 하는 선생님, 막 달려가다가 가슴을 치고 도망가는 남학생들, 학교 앞을 배회하는 바바리맨. 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까? 왜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초등학교 때가 생각난다. 친구랑 손 잡고 걸어가다가 변태 아저씨를 만났는데 우리는 그 사람의 중요한 부위를 만져야 했다. 역겹고 더러웠지만 거부할 수가 없었다. 친구랑 수돗가로 가서 손을 박박 씻었지만 우리는 어른에게 이 이야기를 하거나 도움을 청하지 않았었다. 그냥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숨겨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할 것 같다. 성폭력이 일어나면 엄마에게 제일 먼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좋으니 여성긴급전화 1336로 전화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남자들이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단순히 성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어떤 여성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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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까지 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김애란의 신작들은 나오는 족족 바로 사서 읽어보곤 했는데, 왠지 자신이 없었다. 무지 가슴이 아프고 씁쓸할 것 같았다. 그래도 궁금함이 너무도 커서 지난여름 '미리보기'를 읽어보고 괜찮으면 책을 사려고 했는데..... '미리보기'에 올려놓은 단편이 이 소설집에서 가장 가슴 저민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못 읽겠다고, 외면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곤 어쩌면 읽어볼 만할지도 모르겠다고, 내가 너무 지레 겁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은 어딘가에 멈춰서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누군가가 죽거나, 오랜 연인과 헤어지거나, 세상으로부터 사라지려 하거나, 익숙한 이에게서 낯선 거리감을 느끼는. 무언가를 잃고 갈 곳을 몰라 헤매이기는커녕 그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흔히 단편집이 단편들 중 하나의 제목을 표제작으로 삼는 것과 달리 이 소설집은 <바깥은 여름>이라는 제목을 따로 붙였다. 아마 <풍경의 쓸모>에서 따온 제목인 듯하다.

 

휴대전화 속 부고를 떠올리며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182p)

 

<침묵의 미래>를 제외한 6편의 소설이 세월호 이후에 씌였다. 자연스레 '세월호'의 그림자가 포개진다. 특히 첫 소설 <입동>이 그러하다.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하고 누구보다 정성껏 집을 가꿨던 부부. 하지만 아이가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진다.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주인공이 보험회사 직원이란 이유로 악의적인 소문이 돈다. 직장을 그만두고 무기력해진 아내가 이웃들의 시선을 견디지 못해 집에 틀어박히자 주인공은 이사를 가려고 한다. 하지만 집값은 살 때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고, 아이의 보험금 통장에는 절대 손댈 수가 없다. 어린이집에서 잘못 보낸 복분자액이 터지면서 얼룩덜룩해진 벽면을 손보겠다면서 셀프 도배를 하다가 아내는 오열한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풀을 걸레질하다 아이가 채 쓰다만 이름을 발견한 것이다.

 

지난봄, 우리는 영우를 잃었다. 영우는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자리서 숨졌다. 오십이 개월.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였다. 가끔은 열불이 날 만큼 말을 안 듣고 말썽을 피웠지만 딱 그 또래만큼 그랬던, 그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제 부모를 안을 때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던, 이제 다시는 안아볼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아이였다. 무슨 수를 쓴들 두 번 다시 야단칠 수도, 먹일 수도, 재울 수도, 달랠 수도, 입맞출 수도 없는 아이였다. 화장터에서 영우를 보내며 아내는 '잘 가'라 않고 '잘 자'라 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양 손으로 사진을 매만지며 그랬다.

(21p)

 

ㅡ여기 이사 오고 참 좋았는데. 당신도 그랬어?

ㅡ어.

ㅡ우리가 살아본 데 중에 제일 좋았잖아. 그렇지?

그랬다. 잠이 안 올 정도로 좋았다. 어딘가 가까스로 도착한 느낌. 중심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튕겨진 것도 아니라는 거대한 안도가 밀려왔었다. 우리 분수에 이 정도면 멀리 온 거라고. 욕심 부리지 말고 감사하며 살자고 다짐한 게 엊그제 같은데. 영우가 떠난 뒤 갑자기 어마어마하게 조용해진 이 집에서 아내와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은 도배지를 들고 있자니 결국 그렇게 도착한 곳이 '여기였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절벽처럼 가파른 이 벽 아래였나 하는. 우리가 이십 년간 셋방을 부유하다 힘들게 뿌리 내린 곳이. 비로소 정착했다고 안심한 곳이 허공이었구나 싶었다. (32~33p)

 

ㅡ내 생일에 당신이 케이크 사왔잖아. 여기 식탁에서 같이 초에 불붙이고. 그때 영우는 태어나서 촛불 처음 보는 거였는데. 불을 무슨 엄청 신기한 사물 보듯 응시했잖아? 그날 내가 두 돌도 안 된 영우한테 장난으로 "영우야, 오늘 엄마 생일인데 뭐해줄 거야?" 하고 물었어. 그랬더니 영우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그 말도 못하던 애가 잠시 고민하더니 갑자기 막 손뼉을 치더라고. 영우가 나한테 박수 쳐줬어. 태어났다고.....

아내는 연주를 끝낸 뒤 수천 명의 기립 박수를 받은 피아니스트마냥 울었다. 사람들이 던진 꽃에 싸인 채. 꽃에 파묻힌 채.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는 사람마냥 내가 붙들고 선 벽지 아래서 흐느꼈다. 미색 바탕에 이름을 알 수 없는 흰꽃이 촘촘하게 박힌 종이를 이고서였다. 그러자 그 꽃이 마치 아내 머리 위에 함부로 던져진 조화花처럼 보였다. 누군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놓은 국화 같았다. 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그래서 흰 꽃이 무더기로 그려진 벽지 아래 쪼그려앉은 아내를 보고 있자니,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ㅡ다른 사람들은 몰라.

나는 멍하니 아내 말을 따라 했다.

ㅡ다른 사람들은 몰라. (37p)

 

<노찬성과 에반> 찬성은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산다. 할머니가 일하는 휴게소에 갔다가 화단에 묶여 있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데려와 키운다. '에반'이라 이름 붙여준 강아지는 이미 노견이었지만 찬성은 에반에게 의지한다. 데려오고 2년이 흐르자 에반의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아 동물병원을 찾는다. 에반은 암이었다. 의사는 수술을 해도, 안 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찬성은 에반의 안락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전단지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지만 할머니가 얻어다 준 휴대전화에 필요한 것을 하나씩 사다 보니 어느 새 절반의 돈이 날아가버렸다. 에반에게 줄 핫바를 사서 귀가한 날, 에반은 '아마도' 스스로 차에 뛰어들어 숨진다.

 

<건너편> 도화는 교통정보센터에서 일하는 경찰공무원, 같이 사는 이수는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포기한 직장인이다. 둘은 노량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다. 도화는 아들이 결혼하니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집주인과 이야기하다가 이수가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고 반전세로 전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2월 25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서 비싼 회를 먹다가 도화는 이수가 보증금 뺀 돈으로 직장에 가는 척하면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헤어짐을 통보한 도화는 주인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이수에게 느꼈던 감정이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이수가 공부를 그만둔 계기는 '도화'였다. 이수는 도화가 '어디 가자' 할 때 죄책감 없이 나서고, 친구들이 '놀자'할 때 돈 걱정 없이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사소한 갈등에 속했다. 당시 이수를 가장 히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입사 초 수다스러울 정도로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던 도화가 어느 순간 자기 앞에서 더이상 직장 얘길 꺼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 이수는 모든 걸 정리하고 노량진을 떠났다. (98~99p)

 

<침묵의 미래>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소수언어 중 하나이다. 천여 명의 소수언어 화자가 천여 개의 언어를 지키며 사는 '소수언어박물관'에서 '나'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언어로 얘기하다 죽음을 맞이한 후두암에 걸린 노인을 떠나왔다. '나'는 사라지고 있다.

 

<풍경의 쓸모> '나'는 대학교 시간강사이다. 서울에서 다섯 시간 걸리는 지방대학에 나가 강의를 한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문화콘텐츠 학과 곽교수를 만난 '나'는 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곽교수가 낸 사고를 자신이 낸 것으로 처리하게 된다. 얼마 후 문화콘텐츠 학과에 교수 임용이 공지되고 '나'는 은사를 통해 '곽교수'가 반대해서 임용에서 떨어졌음을 알게 된다. 태국의 뜨거운 태양아래서. '나'의 이야기와 추문에 휩싸여 교직과 가족을 떠난 아버지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아버지를 만난 날, 그러니까 아버지가 내게 돈을 빌리러 집 앞까지 찾아온 날, 아버지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버지는 팔을 길게 뻗어 발신자 이름을 확인했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사물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오래전 우리를 떠난, 그것도 '여자' 때문에 떠난 젊은 아버지가, 노안이란 걸 깨달아서였다.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린 채 발신 번호를 판독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그 바람에 내가 휴대전화 화면에 뜬 사진을 둟어져라 쳐다보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사진 속 두 사람은 등산복 차림이었다. 아버지와 그 여자는 볼을 맞댄 채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두 사람 뒤로 탁 트인 하늘과 사방이 울긋불긋하게 물든 겹겹의 산봉우리가 보였다.

'둘이 정상에 올랐나보다.....'

조소인지 질투인지 모를 감정이 일어났다.

'등산이라니, 참 전형적으로 사신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181~182p)

 

<가리는 손> 남편과 헤어지고 홀로 열다섯 아이를 키우는 '나' 재이는 다문화 가정의 아이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며 컸다. 그런데 중학생 노인 폭행 사건 동영상에 목격자로 연루된다. 재이는 내가 아는 그 사랑스러운 아이일까?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치에 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 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 생략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200p)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남편은 물에 빠진 학생을 구하다가 숨졌다. 아이도 구하지 못했다. '나'는 남편이 자주 사용하던 '시리'에게 '고통'과 '죽음' 등에 대해 물으면서 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버린 남편에 대해 여전히 화가 나 있다. 그러던 어느날 죽은 아이의 누나에게 편지를 받고,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편지지 위 삐뚤빼뚤한 글씨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 당신을 보낸 후 줄곧 보지 않으려 한 눈이었다. 나는 당신이 누군가의 삶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린 데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잠시라도, 정말이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우리 생각은 안했을까. 내 생각은 안 났을까. 떠난 사람 마음을 자르고 저울질했다. 그런데 거기 내 앞에 놓인 말들과 마주하자니 그날 그곳에서 제자를 발견했을 당신 모습이 떠올랐다. 놀란 눈으로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보는 얼굴이 그려졌다.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265~266p)

 

아프지만, 그래도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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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3 나도 모르게 지갑이 털리는 소비 마케팅의 비밀-소비는 감정이다 

 

사실 여자들은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필요해서 사는 물건보다는 뭔가 허전해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광고에 나온 게 너무 좋아 보여서, 누가 좋다고 해서.... 소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 우리는 그냥 사고, 사는 순간 잠시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결국 허전해질 거라는걸. 우리가 이런 사실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면 이 장에서는 그 사실을 여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우리가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기제들에는 뭐가 있는지, 또 방법은 있는지 짚어준다.

"소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소비 마케팅은 최첨단 기술과 과학을 동원해 우리를 '착각'과 '불안' 속에 빠뜨리고, 끊임없이 과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자신의 수입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 빚을 지게 된다. 독자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 과연 당신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193p)

 

어릴 때부터 길들여지는 소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캐릭터 상품들 속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TV 광고 등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는 우리의 아이들은 매일 뭔가를 손에 쥐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쇼핑으로 아이들은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억은 나도 모르게 그 상품을 좋아하게 만들고, 특정한 상품을 선호하는 취향으로 발전한다. 미래의 잠재적인 고객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아기가 한 살 반이 되면 최소 백 개의 브랜드를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2개월 때부터 이미 브랜드에 영향을 받아 자기 정체성을 브랜드를 통해 묘사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197p)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그 상품만 찾도록 선호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게 되죠. 위스키도,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안 좋아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선호를 형성하는 것들이 무척 많이 있죠. 이것은 바로 습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을 갖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점점 많은 은행들이 아이들이 일찍부터 저축을 시작하게 만들려고 해요. 저축은 일찍 시작해서 습관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일찍 저축을 시작하게 하면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호 개발, 즉 무엇을 좋아하게 만드느냐. 그 다음은 습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199p)

더욱 놀라운 사실은 광고의 타깃 층이 전반적으로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가 점점 30세 미만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1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30세만 넘어가도 일하기에 너무 바쁜 나머지 TV 광고를 잘 보지 않는다. 그 결과 광고와 미디어의 공격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동시다발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는 곳이 다르고, 사는 수준이 달라도 아이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는 동일하다. (203p)

 

자본주의의 공격을 받는 남성과 여성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관계지향적 소비'를 한다. 그리고 남편, 아이, 다른 가족의 물건까지 사기 때문에 마케팅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만 소비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남성도 나약한 면이 있지만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산다고 해보죠. 5~6메가픽셀의 카메라를 샀어요. 매장에 가 보니 요즘 신제품은 10메가픽셀이에요. 그럼 더 좋은 것이라며 사죠. 그런데 실험을 했어요. 서로 다른 화질의 사진을 일부러 보여줬죠. 10메가픽셀의 사진이 5메가픽셀의 사진보다 훨씬 안 좋았어요. 재밌게도 사람들은 화소가 더 높다는 사실에 현혹된 나머지 화질이 더 나쁜 걸 보지도 않았죠. 사람들은 아이패드 3을 아이패드 5로 업그레이드하면 더 많은 권역을 가지고, 더 똑똑해진 듯한 착각에 빠지죠. 사실 이것도 '화장품 병 속의 희망'과 똑같아요. 남자들의 방식이죠. 반대로 여성들은 '버전 4', '버전 5'라는 크림을 사지 않겠죠. 남성들은 성분이 추가됐고 더 어려 보인다는 화장품을 안 사고요. 이 남녀간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210p)

 

점점 교묘해지는 소비 마케팅

이 장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CCTV 또한 마케팅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CCTV를 통해 고객을 관찰하고 분석한 후 그에 따른 마케팅 기법을 만들어낸다니, 나도 모르게 누군가 나의 소비행태를 관찰하고 있다니,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것처럼, 마트에도 소비 유도를 위한 마케팅이 침투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객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상품을 집어들기 쉽게 만든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과거에 소비라는 것은 그저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쌀을 사고, 옷이 헤어져 입을 수 없게 되면 옷을 샀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의 생산품들이 다 소비될 수가 없다. 잉여생산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회전이 되지 않으면 자본주의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소비를 권장하는 것, 또는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첨단기술과 첨단과학, 고도의 심리 기술, 그리고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가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소비해 자본주의의 잉여생산물을 떠맡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217p)

 

상술이라는 걸 알면서 속는 이유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매진임박을 알릴 때, 우리는 기회가 또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불안감에 물건을 사고 만다. 그것이 상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팀이 최고의 심리학자와 중독을 연구하고 있는 정신의학 전문가를 만나 우리 감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의식'이었다. 우리의 소비 행동의 95% 이상을 무의식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감자극 마케팅'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데, 사람들은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서서히 기분이 좋아지며 사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일단 사고 나면 합리화를 하게 된다.

"우리가 쇼핑할 때는 합리적으로 의식적인 상태(알파)에서 하기보다 뇌의 베타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220p)




"놀랍게도 우리가 매일 결정하는 것들 대부분이 뇌의 무의식을 관장하는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매일 하는 결정 대부분을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원한다는 느낌 때문에 행동하고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죠. 왜 갑자기 나가서 코카콜라를 사고 싶은지, 왜 티파니 액세서리가 좋고, 롤렉스 시계를 사는지, 왜 슈퍼마켓에서 그 브랜드를 고르는지 이 모든 것을 마케터는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요. 소비자 자신도 모르니까요. 어리석어서 그럴까요? 왜 그런지 알 수 없어요. 그 답을 얻기 위해서 신경과학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뇌과학을 활용하게 된 것이죠. 신경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것이 바로 뉴로 마케팅이라는 것입니다." (225p)

 

브랜드만 보면 지름신이 내리는 이유

어떤 파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돈이 많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브랜드는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이다. "내 생각에 당신은 돈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이다.

"브랜드를 살 때면 우리의 뇌에는 아주 특별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이를 '쿨 스팟'의 활성화라고 말한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보면, 브랜드를 사면 실제로 대뇌전두극부의 활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뇌에서는 '쿨 스팟'이라고 불리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보면 일단 시각적으로 알게 된 정보가 뉴런으로 전달되고, 시냅스를 거치고 마지막에 쿨 스팟에 도달해 이를 활성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브랜드만 보면 지름이 내려 꼭 사야만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뇌는 브랜드를 통해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27p)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는 뇌의 깊숙한 부분, '편도'라는 뇌 부위에 저장된다. 편도는 대뇌변연계의 감정조절을 담당하는데,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뇌의 깊숙한 부분인 감정 영역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바로 이 편도가 자극받아 반짝반짝 빛날 때 소위 말하는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고, 편도에 자리잡은 브랜드를 보면 우리 뇌는 '자동모드'로 전환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228p)

 

자신의 '소비지수' 측정해보기

100만 원 벌어서 100만 원을 다 쓰고 저축을 전혀 하지 않으면 과소비 지수는 1. 바로 재정적인 파탄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100만 원을 벌어서 30만 원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는 0.7. 과소비 상태이다. 40만 원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는 0.6으로 적정소비 상태이고, 50만 원 이상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 0.5로 조금 지나친 근검절약형, 즉 흔히 말하는 '구두쇠'라고 할 수 있다. (231p)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네 가지 유형에 따라 물건을 구입한다. 1. 그 물건이 없어서 2. 그 물건이 망가져서 3. 갖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더 좋아 보여서 4. 그냥. 물건을 살 때 네 가지 유형 중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과소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소비를 부추기는 감정들

런던대학교 애드리언 펀햄 교수에 의하면 첫째가 불안할 때, 둘째가 우울할 때, 셋째 화가 났을 때 소비가 더 쉽게 일어난다고 한다. (234p)

홈쇼핑의 매진임박 알림, 우리 아이만 안 시키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 학원을 보내는 것 등이 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돈의 상징적인 힘The Symbolic Power of Money' 실험

'사회적인 스트레스와 금전이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5분간 토론을 시킨 후 다음 토론을 누구와 같이 하고 싶은지 적어내도록 했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일부를 무작위로 뽑아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하기 싫어한다고 말한 후, 동전을 그려보게 했다.

"아무도 나하고 다음번에 토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동전을 훨씬 더 크게 그렸습니다. '돈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3p)

이렇듯 사회적으로 배척을 당하면 보완 욕구가 생겨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이것이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뇌를 착각하게 만드는 카드 사용

현금을 쓰면 뇌는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중요한 자산이 손실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를 쓰면 뇌에서 고통을 느끼는 중추신경이 마비된다. 현금은 돈을 일방적으로 주고 끝나지만, 카드는 다시 돌려받기 때문이다.

"사실 과소비를 하면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돼요. 하지만 뇌 중추에서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면 쾌를 느끼죠. 순간적으로는 이 쾌의 중추가 움직이지만 결국 돌아서서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와 같은 고통을 낮추어주는 것이 바로 신용카드입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큰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현찰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눈앞에서 현찰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게 소비를 하게 된다는 거죠.

돈을 쓸 때 원래는 쾌의 중추는 활성화가 낮아지고 이 고통의 중추가 활발히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를 할 때 멈칫 하게 되는 거죠. 근데 우리가 신용카드로 소비를 할 때에는 쾌의 중추만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신용카드는 과소비를 일으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250~251p)

 

슬픔도 과소비의 원인이다

하버드의 제니퍼 러너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평화로운 풍경의 비디오를, 다른 한 그룹은 슬픈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 후 플라스틱 물통을 보여주면서 얼마에 사겠냐고 묻자, 전자는 평균 2.5달러를, 후자는 평균 10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슬플 때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하고 더 많은 돈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더 많은 소비를 한다

사람들의 내부에는 '현실적인 나'와 '이상적인 나라는 것이 있다. 현실의 나는 늘 이상적인 나를 따라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행위로 소비를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현실 자아보다는 이상 자아가 높고, 그만큼 많은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을수록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261p)

 

쇼핑중독 체크 리스트(미국 정신의학회)

(1) 쇼핑 습관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2) 쇼핑할 때 죄책감이 든다.

(3) 쇼핑할 때 드는 돈과 시간이 점점 늘어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4) 가족이 보지 못하도록 쇼핑한 물건들을 숨기곤 한다.

(5) 쇼핑은 긴장이나 불안을 풀어주는 취미 생활이다.

(6) 물건이 필요해서, 라기보다는 사는 행위 자체를 더 즐긴다.

(7) 쇼핑을 한 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집안에 가득하다.

(8) 주위에 돈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쇼핑을 많이 한다.

(9) 얼마나 쇼핑을 많이 하는지 알면 다른 사람이 기절할 정도다.

(10)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5)(6)(10)번에 해당하면 기분파, (2)(3)(4)(7)(9)에 해당하면 좀 많이 소비를 하는 편, 만약 (1)(8)에 해당한다면 소핑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늘어난다

1970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우엘슨은 '행복은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는 행복지수 공식을 만들었다.

 

100(소비)/100(욕망)=0(행복지수 0)

500(소비)/100(욕망)=5(행복지수 5)

1000(소비)/100(욕망)=10(행복지수 10)

 

언뜻 보면 소비가 늘어날수록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 같지만 소비는 유한하다.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욕망을 줄여보자.

 

100(소비)/50(욕망)=2(행복지수 2)

100(소비)/10(욕망)=10(행복지수 10)

 

욕망을 줄여도 행복지수는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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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소비도 절제할 수 있다. 특별히 공허한 기분일 때 뭘 많이 사먹거나 필요없는 것을 사거나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소비가 늘어나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우리가 벌어서 소비할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수입 안에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어떤 소비를 할 것인가. 내가 뭘 하면 행복하고, 무엇에 돈을 쓰는 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왕이면 자본주의의 마케팅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내 선택으로 만족하는 소비를 하는 게 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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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위기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금융상품의 비밀-금융지능은 있는가

 

"재테크,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사용된 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돈을 불리는 것을 의미한다.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머리만 잘 써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이 신세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재테크 열기로 인해 돈을 번 사람들은 누굴까?

재테크에 열중했던 당신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재테크로 제일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바로 은행이다. 은행은 조그만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당신의 투자에 올라타 수익이 오르면 그만큼의 수익을 얻어갔으며, 설사 당신의 투자가 실패해도 우수으며 칼같이 수수료를 떼어갔다. 제대로 알아보고 뛰어들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게임, 그것이 바로 은행과 함께 하는 재테크라는 게임이다." (96~97p)

 

금융자본주의의 시대 재테크가 필수가 되다

"'금융자본주의'라는 말은 노동력을 중심으로 하던 자본주의에서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일하면서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가 부의 근원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실제 노동력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돈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바로 '투자'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돈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들어온다. 그래야 은행은 그 돈을 굴리면서 또 다른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재테크'라는 말은 명목상 '당신의 돈을 투자해서 수익을 벌어가라'는 말이지만, 그 이면의 진실은 '어서 은행에 당신의 돈을 쏟아부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01~102p)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이 끝난 후 고금리 시대가 끝나버리자, 재테크의 화려한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금융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된 것이 한몫했다. 외국 자본과 선진 금융회사들이 휘황찬란한 금융상품들을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예금이나 적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못하자 투자에 관심이 쏠렸다.

 

은행은 우리편이 아니다

우리는 은행이 정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은행이 특정상품을 권유하는 것은 판매촉진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금융상품의 장점만 부각시키고 단점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저명한 미국의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상품을 한국에서는 일반 개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전문가들도 모르고 개인도 모르는 상품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전문가들도 모르는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지점에서 판매하는 직원들이 그 상품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죠. 금융기관 본사에서 내려준 공문을 가지고 판매하고 있다고 봐야죠." (111p)




은행원이 상품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도 문제이다.

"내가 가입한 상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서 그 상품을 가입했을 경우에는 '완전판매'입니다. 고객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가입을 하는 거죠. 하지만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입하게 되는 것을 불완전 판매라고 보면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안 좋은 점은 대충 넘어가고 좋은 점만 이야기를 하죠. 따라서 '굉장히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까 은행이 나를 위해서 추천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전에 '아, 지금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이 상품을 많이 팔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상품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상품일 때만 가입하는 것이 자신의 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14p)

"과거에는 시중은행들이 일부 공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민들을 위한 주택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준다든지, 기업들을 위해서 산업자본을 공급해 준다든지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접어들면서부터는 공적인 기능보다는 주식회사적인 기능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성격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17p)

 

위험한 '후순위채권'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상품을 구매했다가 '후순위채권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 '후순위채권'이란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 혹은 도산됐을 경우 채권자들에게 돈을 되돌려주는 순위와 관련되어 있다. 돈은 일반적인 채권 회사와 일반적인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려주고, 그다음이 후순위채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려준다. 쉽게 말해 빚잔치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후순위채권이다.

그렇다면 저축은행에서 후순위채권을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BIS라는 게 있다. 은행 자산의 안전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표가 5% 미만이면 경영개선권고, 3% 미만이면 경영개선요구, 1% 미만이면 경영개선명령을 내릴 수 있다. 즉, BIS가 5% 아래로 내려가면 감독기관으로부터 개선권고나 요구, 명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만약 은행이 예금을 빼서 후순위채권으로 돌리면 부채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BIS가 높아지면 '자산이 건전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124p)

 

펀드에 대해 알아야 할 것

"펀드란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자금을 끌어모은 후, 이 돈을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그 수익을 나눠 갖는 금융상품이다.

내가 펀드를 사면, 나와 같은 상품을 산 사람들의 돈을 합쳐서 '수탁회사'로 가게 되고, 수탁회사는 돈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자산운용회사에 있는 펀드매니저와 협의를 해 투자를 결정한다. 그러면 수탁회사는 가지고 있던 돈을 주식 등에 투자하고, 거기에서 이익이 나면 투자한 비율대로 수익금을 나눠갖는다." (131p)

펀드 상품을 구매할 때 꼭 '수수료'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 펀드운용은 자산운용회사에서 하는데, 은행은 고객에게 판매하는 역할과 그 판매 대금을 잠시 맡아놓는 수탁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펀드를 판매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상품을 팔 때 수수료를 챙기면 선취, 나중에 챙기면 후취, 구매 후 90일 전에 되팔고 싶으면 그동안 생긴 수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탁회사와 투자운용회사에도 매번 보수를 주어야 한다. 펀드가 잘 나가서 그나마 50% 이상의 이익을 낼 때에는 그나마 괜찮다. 수익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준다고 생각하면 큰 부담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해서 보수를 안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핟고 수탁회사와 운용회사가 '수익을 못 냈으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보수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수익이 안 나면 결국 원금에서 주어야 한다." (135p)

여기에 보이지 않는 비용 '주식매매 수수료', 즉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고객의 돈으로 주식을 샀다가 다시 돈으로 환매하는 것을 매매회전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한바퀴 도는 것을 '회전율 100%'라고 한다.

"자산운용회사가 우리가 모아준 100억 펀드로 주식을 다 샀다가 그대로 팔면 매매회전율은 100%이다. 두 바퀴를 돌면 200%가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평균이 100% 정도인데, 200% 정도만 돼도 미국 펀드 관련업자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펀드 중 매매회전율이 1400%, 1500%인 것이 허다하다. 심지어 6200%인 것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회전을 할 때마다 고객이 그 매매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전율이 높다면 당연히 수수료가 높아지고 이는 투자자의 손실로 돌아온다. 따라서 펀드를 살 때에는 꼭 매매회전율을 따져봐야 한다." (137p)

 

좋은 펀드 고르는 법

1. 펀드의 이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펀드의 이름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제일 앞에 있는 'M에셋'이라는 것은 자산운용사를 가르키는 말이다. 즉, '이 펀드의 자금은 M에셋에서 운용한다'는 것을 표기한 것이다. 그 다음에 '디스커버리'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일종의 투자전략을 의미한다. 디스커버리란 '유망기업을 발굴해 내서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세 번째로 '주식형'이라는 것은 어디에 주로 투자하는지 나타낸다. 이 경우에는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뜻이다. 그 뒤에 붙은 4라는 숫자는 이 펀드의 시리즈 번호라고 할 수 있다. 즉, 1이라고 씌어 있으면 해당 펀드의 첫 번째 시리즈이고 2라고 씌어 있으면 두 번째 시리즈라는 의미이다. 이 숫자가 올라갈수록 나름대로 잘 나가는 인기 있는 펀드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모집금액이 1조 원이 넘었을 때에만 다음 시리즈가 허용되기 때문에 3이라고 씌어 있으면 이미 그전의 시리즈에서 2조 원에 달하는 펀드를 모집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씌어 있는 A는 수수료의 체계를 의미한다. A라고 씌어 있으면 선취, B라고 씌어 있으면 후취, C는 둘다 없는 경우이다." (139p)




2. 수익률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은행은 펀드를 판매할 때 특정 수익률을 제시하는데 펀드 가입 시에 판매자가 제시하는 수익률은 다 '과거의 데이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원금을 모두 날린다고 해도 은행과 자산운용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다

"한마디로 보험은 펀드와 같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따라서 차라리 보험금이 낮은 보장성 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 돈은 투자로 불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험에 쓸 수 있는 돈이 10만 원 있다면 모두 저축성 보험에 쓰지 말고, 3만 원은 보장성 보험에 들고 나머지 7만 원은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145p)

"보험에 가입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과다한 사업비와 수수료이다. 변액보험의 경우에는 그것이 평균 10%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상당한 비용이 대형 보험대리점의 집기를 사는 비용이나 과다한 광고비로 낭비되고 있다." (146p)

좋은 보험에 가입하려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보장을 받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보험에는 '정액보장 상품'과 '실손보장 상품' 있는데 '정액'은 중복보상이 가능하지만 '실손'은 보험을 세 개 들었어도 손해액을 나눠지급하기 때문에 하나만 들면 된다.

 

파생상품은 도박이다

파생상품은 '그 가치가 통화, 채권, 주식 등 기초금융자산의 가치변동에 의해 결정되는 금융계약'이다. 여기에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이 사과를 이용해 사과식초, 사과파이, 사과잼, 사과주스 등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바로 '파생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파생상품에는 선도계약, 선물, 옵션, 스왑이 있다. (152p)

투기성이 있어서 파생상품은 수익률이 상당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아주 크다.

 

아이들에게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

EBS 다큐프라임 취재팀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금융이해력 지수를 측정했는데, 아이들은 신용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신용카드를 어떻게 써야 하며,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력이 낮았다. 또 중학생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인식 조사'를 했는데, 청소년들은 가정 형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실제 경제 사정보다 훨씬 풍요롭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부모들이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가정 형편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금육 교육이 첫걸음이다.

 

금융지능이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한 금융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융지능FQ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매일 쏟아져나오는 상품들을 다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독립재정상담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재정상담사는 금융상품 제공자(보험회사와 은행 등)을 대신해서 금융상품을 팔게 됩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금융 시장의 미로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소비자를 돕기 위해서예요." (178p)

우리나라에도 '재무상담사'나 '재무설계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개 특정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하기가 어렵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금융자본주의에서 우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칭해져야 한다. 투자는 '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돈을 언제든지 잃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전적으로 투자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라는 개념은 상품에 문제가 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추진중 -_-;;;)

 

불량 식품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불량 금융상품은 온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가정파괴범이자 사회악이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금융상품 판매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달라', '모르겠으니 다시 설명해 달라', '이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 상품인지 확실하게 알려 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 가져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18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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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저축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보험은 시어머니와 엄마가 가입해준 게 전부인 '금융지능' 제로인 사람이다. 살면서 재테크 책을 빌려온 적은 있지만 늘 나에게는 금융과 돈, 재테크가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있고,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온 지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게 된 것이다. 그동안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용어들이 조금은 쉽게 다가오고, 최소 금융업의 탐욕의 희생자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앞으로 이런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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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지은 PD가 쓴 <프롤로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살다 보면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는 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는 절대로 쉽게 호전될 수가 없다. 경기 침체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좌절할 만한 일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왜 그럴까?' 하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안정과 행복을 원하는데, 왜 정작 세상은 우울하고 피곤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당신이 '자본주의의 진실'을 알아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경제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론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나의 행복과 내 가족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이다." (5p)

"자본주의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는 돈에 관한 비밀이 있다. '감춰진 진실'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고,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경제기사를 읽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진짜 필요한 실물 경제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니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똑바로 보는 안목을 길러줄 방법이 없다. 왜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도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걸까? 월급은 잘 오르지 않는데도 물가는 내려갈 줄 모르고 끊임없이 오르기만 하는 걸까? 이 책을 통해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금융위기가 생겨나는지, 왜 계속해서 경기가 침체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8p)

 

 

PART I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밀

 

우리는 학교에서 '수요와 공급에 관한 법칙'을 배웠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싸진다는 것. 하지만 자장면 값이 떨어지지는 않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이다.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00년에 3천 원으로 고등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면, 2010년에는 3천 원으로 달랑 고등어 꼬리밖에 사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물가가 오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21~22p)

 

돈은 컴퓨터에 화면에 입력된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돈의 양은 왜 많아졌을까? 우리는 흔히 돈을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이 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은행은 100원이 들어오면 그중 10원만 남기고 나머지 90원은 A라는 사람에게 대출해 준다. 이렇게 되면 나의 통장에 이미 100원이 찍혀 있을뿐더러 A라는 사람의 대출 통장에도 90원이 찍힌다. 이제 A도 90원을 쓸 수 있게 되니, 나와 A가 동시에 쓸 수 있는 돈이 갑자기 190원이 된다. 결과적으로 100원의 예금이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90원이라는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 것이다."(28~29p)

은행이 쌓아둔 10퍼센트의 돈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하며, 이것이 실제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시중에 있는 이유이다. 없던 돈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돈을 늘리는 과정을 '신용창조', '신용팽창'이라고 부른다.  

 

은행의 탄생

17세기 영국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보관하고 이에 대해 보관증을 받았다. 사람들은 금 대신 보관증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금세공업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둔 금화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자 금세공업자는 받은 이자의 일부를 나눠주기로 하고 위기를 넘기는데, 더 욕심을 내서 있지도 않은 금에 대해 보관증을 남발한다. 금고에 없는 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금세공업자가 엄청난 부를 축적하자 몇몇 부유한 예금주들은 자신의 금화를 모두 가져가버린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금화가 필요했던 영국 왕실은 가상의 돈을 만들어 대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은행이 설립된 것이다.




"결국 은행은 자기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돈을 창조하고, 이자를 받으며 존속해 가는 회사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가 된 이유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출 문자가 날아오고, 여기저기 은행에서 대출 안내문을 보내는 이유이다. 고객이 대출을 해가야 은행은 새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44p)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방법

이자율(기준금리)를 통제한다. 이자율을 낮추면 은행과 사람들이 부담을 덜 느끼고 돈을 많이 빌리기 때문에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고, 이자율이 낮으면 돈을 적게 빌리기 때문에 통화량이 줄어든다. 두번째는 '양적완화'이다. 즉, 돈을 찍어낸다. 이자율을 낮춰 경기 부양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직접 화폐를 찍어내서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늘린다. 하지만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스스로 화폐를 찍어내면서 통화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숙명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누렸던 호황이라는 것이 진정한 돈이 아닌 빚으로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해서 만들어낸 돈이 아니다.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또다시 돈을 낳으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의 정해진 길을 걷고,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숙명'이다." (61p)

 

은행 시스템에서의 이자

1. 돈은 한정되어 있다.

2. '이자+실제의 돈'은 '실제의 돈'보다 더 많다.

3. 누군가가 '이자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한다.

4. 따라서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내기 위해 남의 돈을 가져와야 한다.

 

돈은 빚이다

"돈은 '빚'이다.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돈은 '빚'이라는 형태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누군가 빚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 '빚'에 대한 이자를 받아 은행은 수익을 챙긴다. '빚'이 없으면 은행도 없다." (69p)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은행이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계속해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야 운영이 되는데, 돈이 많아지고 신용이 좋은 사람들이 대출을 하지 않자, 돈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상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기축통화가 된 달러

1944년 미국이 35달러를 내면 금 1온스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켰다. (브레튼우즈 협정)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달러 가지가 하락하자 각국에서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금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진 미국이 수세에 몰리자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달러와 금을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금태환제' 철폐)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FRB이다. FRB는 힘있는 몇몇 은행가들이 만들어낸 민간은행의 연합으로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정부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돈을 찍어내 미국 정부에 달러를 빌려주고 이익을 얻을 뿐. 한마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극소수의 금융자본가들이다. FRB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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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돈이 통장에 찍힌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진짜였다. 은행이 내 통장에 찍힌 액수를 전부 보관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우리는 대출과 이자로 먹고 사는 은행의 노예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달러를 발행하는 곳이 정부가 아닌 민간은행이라니! 그것도 자기들 맘대로 금리를 조절하거나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방식으로  소규모 은행들과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익을 추구하고도 멀쩡하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니!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자본주의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최대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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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왜 미투 사건들과 관련되어 이 책이 회자되는지 알겠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속에 남녀차별과 불합리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때로는 여자인 우리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동안 우울한 책은 읽기 싫어서 나중으로 미뤄둔 책인데, 정신과의사가 김지영에 대해 쓴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불편함이 덜했다. 아마 작가분이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작가생활을 하셔서 이런 문체가 뭍어나오는 듯하다.

 

내 삶에 겹쳐지는 '김지영의 삶'
소설은 2015년 서른넷 세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둔 김지영 씨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김지영 씨는 어느 날 주변사람에게 빙의해 속마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시댁에서 같은 증세를 보인 후, 정신과상담을 받게 된 김지영 씨. 이 소설은 그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무원 아빠, 주부인 엄마 밑에서 태어난 김지영의 삶은 여느 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인 막내 손주만 예뻐하는 할머니, 학교에서 겪는 일상적인 차별, 대학을 나와 겨우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산과 함께 퇴직. 단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게 살고 있을 뿐인데 '맘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삶. 김지영 씨의 성장 과정과 사회생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맞아. 맞아. 이런 경우 진짜 많지.' '그래, 학교 다닐 때 그랬었어.' 하고 맞장구를 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유독 공감이 되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봐줄 사람은 없고, 일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고, 새로운 걸 배워보려고 해도 원하는 강좌는 모두 저녁 강좌... 간만에 여유를 즐기며 애기 친구엄마들과 차 한잔 하며 깔깔 대고 있노라면 '맘충'인 듯 우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우린 요즘 그런 얘길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고. 분명 같이 결혼하고 같이 집사고 같이 애낳았는데, 여자만 맨날 발 동동거리면서 뛰어다닌다고. 김지영 씨의 언니 김은영 씨가 원하는 대학 대신 교대를 가라고 권하는 엄머에게 하는 말이 참 정곡을 찌른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 막내도 교대 보낼 거야?"
여자들의 이런 삶이 쉽게 나아지지 않으리란 걸 마지막 장이 시사한다. 보고서를 마친 담당의사는 자신이 아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임신으로 그만두는 여직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번거로워지느니 오히려 잘됐다면서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보겠다고 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직원은 곤란하다면서.

 

우리 딸들의 삶은 더 나아질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김지영'이 대한민국을 살아가게 될까. 우리는 과연 우리 엄마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예전보다 집안일이 수월해지고, 남자 형제를 위해 돈을 벌러 생활전선으로 뛰어드는 일이 줄어들었으니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여성도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과 그래도 애는 여자가 봐야 한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존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둘 다 아등바등 잘하려고 애쓰느라 더 힘들어진 건 아닐까.




소설 속 소름끼치는 장면 중 하나는 김지영 씨가 퇴사한 회사에서 벌어진 화장실 몰카 사건이다. 보안 요원이 화장실에 설치한 불법카메라의 사진을 성인들이 보는 사이트에 꾸준히 올렸는데, 이 사이트의 회원인 이 회사 과장이 영상 속의 사람들이 회사 동료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알리기는커녕 다른 사원들과 사진을 공유했다. 이 사실이 여직원들 귀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조사를 받는다. 그런데 남자직원들의 대응이 가관이다.

"그런데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자기들이 몰카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좀 본 거 가지고 성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사진 유포했잖아. 범죄를 방조했잖아. 근데 그게 잘못인 줄도 몰라. 완전히 개념이 없더라니까."

하,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태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 딸들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씁쓸하다.

 

소설 속 각종 차별과 편견들
"언니는 분유 맛없어?"
"맛있어."
"근데 왜 안 먹어?"
"치사해서."
"응?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김지영 씨는 치사하다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언니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혼내는 게 단순히 김지영 씨가 더 이상 분유 먹을 나이가 아니라거나 동생 먹을 게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이유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24~25p

 

차승연 씨는 항상 특별 대우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여학생들도 똑같이 일 시키고 기회도 똑같이 달라고, 점심 메뉴 선택 같은 것 말고 회장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 대충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넘겼는데 9년 동안 가장 열심히 동아리에 나오고 있는 박사 과정 남자 선배 하나가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여자는 힘들어서 못해요.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 주려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기운 없으면 보약 한 채 해 드시든가. 내가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악착같이 나와서 여자 회장 꼭 보고 말 거야." -91p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에게 억지로 권하지는 않고,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사 주지만 되도록 함께 먹지는 않는 선배였다. 태도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김지영 씨도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더 유심히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선배의 목소리가 맞았다. 취했을 수도 있고, 쑥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 괜한 짓을 할까 봐 더 과격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김지영 씨의 처참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93p

 

김은실 팀장은 4명의 팀장 중 유일한 여자 팀장이었다.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며 육아와 가사는 완전히 어머니께 맡기고 본인은 일만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멋지다고 했고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뜬금없게도 남편을 칭찬했다.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보다 고되다는 둥 요즘은 장서 갈등이 사회 문제라는 등 하며, 장모를 모시고 사는 걸 보면 만난 적은 없지만 김은실 팀장의 남편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했다. 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미용 일을 하러 나간 동안 잠깐씩 막내를 봐주셨을 뿐 삼 남매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따.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하지만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111p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나, 나도.....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136~137p

 

회사에서는 임신한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출근과 퇴근 시간을 30분씩 늦출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는데, 김지영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남자 동기가 대뜸 말했다.
"와, 좋겠다. 이제 늦게 출근해도 되겠네."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138p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44p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149p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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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한창 베스트셀러였을 때 귀여운 보노보노 부채가 갖고 싶기도 하고, 겸사겸사 책을 샀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나의 감각이 좀 이상한 건지, 작가의 이야기와 보노보노의 철학이 섞이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억지로 짜맞춘 듯한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노보노>라는 만화 자체는 삶을 깊이 통찰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곱씹을수록 아 이건 명언이다 싶은 말도 많았고.

 

#1

늘 재미를 좇는 너부리는 숲속 동물들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를 나누며 웃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썰렁한 장난을 반복하면서 킬킬대고,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에도 심히 공감하는 보노보노와 포로리를 보고 왜들 저라나 싶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해 포로리는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는다. 다들 쓸쓸해서 그런 거라는 얘기다.

 

너부리: 나 좀 이해 안 가는게,

          어제 뭘 했다느니 오늘 날씨가 어떻다느니.....

          그런 얘길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포로리: 아니야.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다들 친구 집에 놀러 와도 금방 돌아가버리고 말 거야.

보노보노: 그건 쓸쓸하겠네.

포로리: 쓸쓸하지! 바로 그거야, 보노보노!

          다들 쓸쓸하다구. 다들 쓸쓸하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구.

 

#2

하루는 끊임없이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재미를 궁리하느라 피곤해하는 홰내기를 아빠가 부른다. 아빠는 잠깐 앉아보라면서 홰내기의 등을 긁어주겠다고 한다. 갑자기 왜 등을 긁어주겠다는 건지 의아해하는 홰내기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한다.

 

홰내기는 항상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생각하잖아.

그래서 좀 피곤한 거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등 긁는 것만으로도 놀이가 된단다.

 

#3

야옹이 형은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는 동네를 그저 걷는 걸 즐긴다. 포로리는 그런 야옹이 형이 신기해서 하루는 몰래 뒤를 밟아보리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다녀봐도 야옹이 형은 별다른 일을 하지도 않고 그냥 걷기만 한다. 딱히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 짓을 왜 계속하는지 궁금해하는 포로리에게 야옹이 형은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을 한다.

 

포로리: 왜 아무 일도 없는 게 좋아?

          그냥 걷기만 하는 건 지루해 보이는데.

야옹이형: 응, 지루해.

             난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걷는 셈이야.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어서.

 

야옹이 형은 이상한 말만 한다고 생각하며 포로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부모님의 모습에 처음으로 신기한 생각이 든다.

 

아,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좋은 거구나.

 

#4

그동안 포로리는 매년 아빠와 꽃구경을 갔었다. 그런데 올해는 편찮으신 부모님을 돌보느라 지쳐서 꽃구경을 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만다. 그러자 서운해하는 아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진 포로리는 지금이라도 꽃구경을 가자고 나서고, 아빠는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함께 걸어가는 길에 부자가 나누는 대화가 마음을 파고든다.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어기는 거 아냐.

포로리: 어긴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예요.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잊어버리는 거 아냐.

                 젊은이들한테는 다음 달, 내년도 있겠지만

                 노인네들에게는 지금뿐이라고.

 

#5

무언가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

다들 분명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겠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뭐랄까.

굉장히 부지런한 거 아닐까?

 

 

#6

봄은 저쪽에서 천천히 천천히 오는 거구나.

달팽이는 걷는 게 늦구나.

그럼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내가 여기 여기까지 걸어온 거구나.

역시, 천천히 오는 건 굉장해.

 

#7

하루는 홰내기가 놀러 와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 말에 늘 시니컬한 너부리는 또 한번 시비를 건다.

 

홰내기: 자, 너희는 뭐가 되고 싶니?

너부리: 되고 싶다니 뭐가? 딱히 되고 싶은 것 따윈 없어.

홰내기: 뭐? 되고 싶은 게 없어?

너부리: 난 나야.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너는 지금 네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거야. 맞지?

          그러니까 뭐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거라고.

          안 그래?

 

보노보노: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안 좋은 거야?

너부리: 당연하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

 

#8

누구에게나 아무도 모르는 모습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거라면

나, 대단하네.

나, 대단하네.

 

보노보노, 참 대단하다.

많은 걸 알고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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