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PART 3 나도 모르게 지갑이 털리는 소비 마케팅의 비밀-소비는 감정이다 

 

사실 여자들은 대체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필요해서 사는 물건보다는 뭔가 허전해서, 필요하다고 하니까, 광고에 나온 게 너무 좋아 보여서, 누가 좋다고 해서.... 소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는 것. 우리는 그냥 사고, 사는 순간 잠시 만족감을 느끼는 듯하지만 결국 허전해질 거라는걸. 우리가 이런 사실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면 이 장에서는 그 사실을 여러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우리가 끊임없이 소비하도록 유도하는 기제들에는 뭐가 있는지, 또 방법은 있는지 짚어준다.

"소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자본주의에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소비 마케팅은 최첨단 기술과 과학을 동원해 우리를 '착각'과 '불안' 속에 빠뜨리고, 끊임없이 과소비를 유도하고 있다. 자신의 수입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렇다. 빚을 지게 된다. 독자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 과연 당신은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는가?" (193p)

 

어릴 때부터 길들여지는 소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소비'를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릴 때부터 시작된다. 무수히 쏟아져나오는 캐릭터 상품들 속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이나 TV 광고 등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보는 우리의 아이들은 매일 뭔가를 손에 쥐고 있다. 이렇게 시작된 쇼핑으로 아이들은 아주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된다. 이러한 기억은 나도 모르게 그 상품을 좋아하게 만들고, 특정한 상품을 선호하는 취향으로 발전한다. 미래의 잠재적인 고객으로 길들여지는 것이다.

"아기가 한 살 반이 되면 최소 백 개의 브랜드를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2개월 때부터 이미 브랜드에 영향을 받아 자기 정체성을 브랜드를 통해 묘사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197p)




"아이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그중 한 가지는 아이들이 그 상품만 찾도록 선호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보면 아주 재미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좋아하게 되죠. 위스키도, 담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안 좋아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선호를 형성하는 것들이 무척 많이 있죠. 이것은 바로 습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떤 습관을 갖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점점 많은 은행들이 아이들이 일찍부터 저축을 시작하게 만들려고 해요. 저축은 일찍 시작해서 습관이 되는 것이 중요하죠. 일찍 저축을 시작하게 하면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호 개발, 즉 무엇을 좋아하게 만드느냐. 그 다음은 습관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199p)

더욱 놀라운 사실은 광고의 타깃 층이 전반적으로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광고가 점점 30세 미만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10세 미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증가하고 있다. 사실 30세만 넘어가도 일하기에 너무 바쁜 나머지 TV 광고를 잘 보지 않는다. 그 결과 광고와 미디어의 공격은 전 세계 아이들에게 동시다발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사는 곳이 다르고, 사는 수준이 달라도 아이들이 알고 있는 브랜드는 동일하다. (203p)

 

자본주의의 공격을 받는 남성과 여성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감정적이고 '관계지향적 소비'를 한다. 그리고 남편, 아이, 다른 가족의 물건까지 사기 때문에 마케팅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들만 소비에 취약한 것은 아니다.

"남성도 나약한 면이 있지만 방식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를 산다고 해보죠. 5~6메가픽셀의 카메라를 샀어요. 매장에 가 보니 요즘 신제품은 10메가픽셀이에요. 그럼 더 좋은 것이라며 사죠. 그런데 실험을 했어요. 서로 다른 화질의 사진을 일부러 보여줬죠. 10메가픽셀의 사진이 5메가픽셀의 사진보다 훨씬 안 좋았어요. 재밌게도 사람들은 화소가 더 높다는 사실에 현혹된 나머지 화질이 더 나쁜 걸 보지도 않았죠. 사람들은 아이패드 3을 아이패드 5로 업그레이드하면 더 많은 권역을 가지고, 더 똑똑해진 듯한 착각에 빠지죠. 사실 이것도 '화장품 병 속의 희망'과 똑같아요. 남자들의 방식이죠. 반대로 여성들은 '버전 4', '버전 5'라는 크림을 사지 않겠죠. 남성들은 성분이 추가됐고 더 어려 보인다는 화장품을 안 사고요. 이 남녀간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210p)

 

점점 교묘해지는 소비 마케팅

이 장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CCTV 또한 마케팅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CCTV를 통해 고객을 관찰하고 분석한 후 그에 따른 마케팅 기법을 만들어낸다니, 나도 모르게 누군가 나의 소비행태를 관찰하고 있다니,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백화점에 창문이 없는 것처럼, 마트에도 소비 유도를 위한 마케팅이 침투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고객들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에 상품을 집어들기 쉽게 만든 것이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이동시켰다. 과거에 소비라는 것은 그저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것이었다. 배가 고프면 쌀을 사고, 옷이 헤어져 입을 수 없게 되면 옷을 샀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의 생산품들이 다 소비될 수가 없다. 잉여생산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회전이 되지 않으면 자본주의에는 시스템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소비를 권장하는 것, 또는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첨단기술과 첨단과학, 고도의 심리 기술, 그리고 유명인을 내세운 광고가 필요하다. 결국 소비자들은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도 소비해 자본주의의 잉여생산물을 떠맡는 사람'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217p)

 

상술이라는 걸 알면서 속는 이유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매진임박을 알릴 때, 우리는 기회가 또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 불안감에 물건을 사고 만다. 그것이 상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그 유혹에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취재팀이 최고의 심리학자와 중독을 연구하고 있는 정신의학 전문가를 만나 우리 감정에 대해 알아보았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의식'이었다. 우리의 소비 행동의 95% 이상을 무의식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오감자극 마케팅'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데, 사람들은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서서히 기분이 좋아지며 사고 싶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일단 사고 나면 합리화를 하게 된다.

"우리가 쇼핑할 때는 합리적으로 의식적인 상태(알파)에서 하기보다 뇌의 베타 상태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220p)




"놀랍게도 우리가 매일 결정하는 것들 대부분이 뇌의 무의식을 관장하는 부분에서 일어납니다. 매일 하는 결정 대부분을 의식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원한다는 느낌 때문에 행동하고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죠. 왜 갑자기 나가서 코카콜라를 사고 싶은지, 왜 티파니 액세서리가 좋고, 롤렉스 시계를 사는지, 왜 슈퍼마켓에서 그 브랜드를 고르는지 이 모든 것을 마케터는 알고 싶습니다. 소비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어요. 소비자 자신도 모르니까요. 어리석어서 그럴까요? 왜 그런지 알 수 없어요. 그 답을 얻기 위해서 신경과학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뇌과학을 활용하게 된 것이죠. 신경과학과 마케팅을 결합한 것이 바로 뉴로 마케팅이라는 것입니다." (225p)

 

브랜드만 보면 지름신이 내리는 이유

어떤 파티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남자가 여자에게 "나는 돈이 많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마케팅이라면, 브랜드는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이다. "내 생각에 당신은 돈이 많은 것 같아요"라고 말이다.

"브랜드를 살 때면 우리의 뇌에는 아주 특별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마틴 린드스트롬은 이를 '쿨 스팟'의 활성화라고 말한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을 통해 보면, 브랜드를 사면 실제로 대뇌전두극부의 활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뇌에서는 '쿨 스팟'이라고 불리는 영역입니다.'

우리가 브랜드를 보면 일단 시각적으로 알게 된 정보가 뉴런으로 전달되고, 시냅스를 거치고 마지막에 쿨 스팟에 도달해 이를 활성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브랜드만 보면 지름이 내려 꼭 사야만 하는 이유이다. 우리의 뇌는 브랜드를 통해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227p)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브랜드는 뇌의 깊숙한 부분, '편도'라는 뇌 부위에 저장된다. 편도는 대뇌변연계의 감정조절을 담당하는데, 강력한 브랜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뇌의 깊숙한 부분인 감정 영역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바로 이 편도가 자극받아 반짝반짝 빛날 때 소위 말하는 '지름신'이 강림하게 되고, 편도에 자리잡은 브랜드를 보면 우리 뇌는 '자동모드'로 전환된다. 그러면 무의식적으로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228p)

 

자신의 '소비지수' 측정해보기

100만 원 벌어서 100만 원을 다 쓰고 저축을 전혀 하지 않으면 과소비 지수는 1. 바로 재정적인 파탄 상태를 의미한다. 만약 100만 원을 벌어서 30만 원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는 0.7. 과소비 상태이다. 40만 원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는 0.6으로 적정소비 상태이고, 50만 원 이상을 저축하면 과소비 지수 0.5로 조금 지나친 근검절약형, 즉 흔히 말하는 '구두쇠'라고 할 수 있다. (231p)

물건을 살 때 사람들은 네 가지 유형에 따라 물건을 구입한다. 1. 그 물건이 없어서 2. 그 물건이 망가져서 3. 갖고 있지만 새로운 것이 더 좋아 보여서 4. 그냥. 물건을 살 때 네 가지 유형 중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과소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소비를 부추기는 감정들

런던대학교 애드리언 펀햄 교수에 의하면 첫째가 불안할 때, 둘째가 우울할 때, 셋째 화가 났을 때 소비가 더 쉽게 일어난다고 한다. (234p)

홈쇼핑의 매진임박 알림, 우리 아이만 안 시키면 불안하다는 이유에서 학원을 보내는 것 등이 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돈의 상징적인 힘The Symbolic Power of Money' 실험

'사회적인 스트레스와 금전이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5분간 토론을 시킨 후 다음 토론을 누구와 같이 하고 싶은지 적어내도록 했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일부를 무작위로 뽑아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하기 싫어한다고 말한 후, 동전을 그려보게 했다.

"아무도 나하고 다음번에 토론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라는 말을 들었던 사람들은 동전을 훨씬 더 크게 그렸습니다. '돈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43p)

이렇듯 사회적으로 배척을 당하면 보완 욕구가 생겨서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이것이 '과소비'로 이어질 수 있다.

 

뇌를 착각하게 만드는 카드 사용

현금을 쓰면 뇌는 고통을 느낀다고 한다. 중요한 자산이 손실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드를 쓰면 뇌에서 고통을 느끼는 중추신경이 마비된다. 현금은 돈을 일방적으로 주고 끝나지만, 카드는 다시 돌려받기 때문이다.

"사실 과소비를 하면 우리는 고통을 느끼게 돼요. 하지만 뇌 중추에서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가지면 쾌를 느끼죠. 순간적으로는 이 쾌의 중추가 움직이지만 결국 돌아서서는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죠. 이와 같은 고통을 낮추어주는 것이 바로 신용카드입니다. 지금 당장은 내가 큰돈을 내는 것이 아니고 현찰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눈앞에서 현찰이 나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게 소비를 하게 된다는 거죠.

돈을 쓸 때 원래는 쾌의 중추는 활성화가 낮아지고 이 고통의 중추가 활발히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를 할 때 멈칫 하게 되는 거죠. 근데 우리가 신용카드로 소비를 할 때에는 쾌의 중추만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신용카드는 과소비를 일으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250~251p)

 

슬픔도 과소비의 원인이다

하버드의 제니퍼 러너 교수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사람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평화로운 풍경의 비디오를, 다른 한 그룹은 슬픈 내용의 비디오를 보여주었다. 그 후 플라스틱 물통을 보여주면서 얼마에 사겠냐고 묻자, 전자는 평균 2.5달러를, 후자는 평균 10달러를 내겠다고 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슬플 때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무의식적으로 더 많은 물건을 갖고 싶어하고 더 많은 돈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더 많은 소비를 한다

사람들의 내부에는 '현실적인 나'와 '이상적인 나라는 것이 있다. 현실의 나는 늘 이상적인 나를 따라가려고 애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언제나 거리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한 행위로 소비를 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을수록 현실 자아보다는 이상 자아가 높고, 그만큼 많은 차이가 나게 된다. 그래서 자존감이 낮을수록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261p)

 

쇼핑중독 체크 리스트(미국 정신의학회)

(1) 쇼핑 습관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

(2) 쇼핑할 때 죄책감이 든다.

(3) 쇼핑할 때 드는 돈과 시간이 점점 늘어나지만 별다른 느낌이 없다.

(4) 가족이 보지 못하도록 쇼핑한 물건들을 숨기곤 한다.

(5) 쇼핑은 긴장이나 불안을 풀어주는 취미 생활이다.

(6) 물건이 필요해서, 라기보다는 사는 행위 자체를 더 즐긴다.

(7) 쇼핑을 한 뒤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 집안에 가득하다.

(8) 주위에 돈 문제를 일으킬 정도로 쇼핑을 많이 한다.

(9) 얼마나 쇼핑을 많이 하는지 알면 다른 사람이 기절할 정도다.

(10) 물건을 사면 기분이 좋아진다.

->(5)(6)(10)번에 해당하면 기분파, (2)(3)(4)(7)(9)에 해당하면 좀 많이 소비를 하는 편, 만약 (1)(8)에 해당한다면 소핑중독일 가능성이 높다.

 

욕망을 줄이면 행복이 늘어난다

1970년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우엘슨은 '행복은 소비를 욕망으로 나눈 것'이라는 행복지수 공식을 만들었다.

 

100(소비)/100(욕망)=0(행복지수 0)

500(소비)/100(욕망)=5(행복지수 5)

1000(소비)/100(욕망)=10(행복지수 10)

 

언뜻 보면 소비가 늘어날수록 행복지수가 올라갈 것 같지만 소비는 유한하다. 소비할 수 있는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이번에는 욕망을 줄여보자.

 

100(소비)/50(욕망)=2(행복지수 2)

100(소비)/10(욕망)=10(행복지수 10)

 

욕망을 줄여도 행복지수는 늘어난다.

 

#

결국은 감정 조절을 잘하는 사람이 소비도 절제할 수 있다. 특별히 공허한 기분일 때 뭘 많이 사먹거나 필요없는 것을 사거나 하는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소비가 늘어나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지만, 우리가 벌어서 소비할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수입 안에서 최대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어떤 소비를 할 것인가. 내가 뭘 하면 행복하고, 무엇에 돈을 쓰는 게 나에게 가장 잘 맞는지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이왕이면 자본주의의 마케팅에 끌려다니기보다는 내 선택으로 만족하는 소비를 하는 게 나을 테니까.

 

반응형
반응형

 

 

 

PART 2 위기의 시대에 꼭 알아야 할 금융상품의 비밀-금융지능은 있는가

 

"재테크, 언젠가부터 한국 사회에 유행처럼 사용된 말이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금융상품에 투자해 돈을 불리는 것을 의미한다.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머리만 잘 써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이 신세계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재테크 열기로 인해 돈을 번 사람들은 누굴까?

재테크에 열중했던 당신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재테크로 제일 많은 돈을 번 사람은 바로 은행이다. 은행은 조그만 위험도 감수하지 않은 채 당신의 투자에 올라타 수익이 오르면 그만큼의 수익을 얻어갔으며, 설사 당신의 투자가 실패해도 우수으며 칼같이 수수료를 떼어갔다. 제대로 알아보고 뛰어들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게임, 그것이 바로 은행과 함께 하는 재테크라는 게임이다." (96~97p)

 

금융자본주의의 시대 재테크가 필수가 되다

"'금융자본주의'라는 말은 노동력을 중심으로 하던 자본주의에서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는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일하면서 만들어내는 상품과 서비스가 부의 근원이 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실제 노동력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돈이 돈을 만드는 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상품을 만들어내는 노동을 하지 않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부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 바로 '투자'라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돈이 한꺼번에 은행으로 들어온다. 그래야 은행은 그 돈을 굴리면서 또 다른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재테크'라는 말은 명목상 '당신의 돈을 투자해서 수익을 벌어가라'는 말이지만, 그 이면의 진실은 '어서 은행에 당신의 돈을 쏟아부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아주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101~102p)

우리나라는 고도성장이 끝난 후 고금리 시대가 끝나버리자, 재테크의 화려한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 금융 시장이 급속도로 개방된 것이 한몫했다. 외국 자본과 선진 금융회사들이 휘황찬란한 금융상품들을 선보인 것이다. 게다가 예금이나 적금으로 받을 수 있는 이자가 물가상승률을 따르지 못하자 투자에 관심이 쏠렸다.

 

은행은 우리편이 아니다

우리는 은행이 정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은행이 특정상품을 권유하는 것은 판매촉진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금융상품의 장점만 부각시키고 단점을 설명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어느 저명한 미국의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에서도 잘 알지 못하는 상품을 한국에서는 일반 개인들에게 판매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전문가들도 모르고 개인도 모르는 상품들이 버젓이 거래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융전문가들도 모르는 상품이 판매되고 있는데, 지점에서 판매하는 직원들이 그 상품을 안다는 건 불가능하죠. 금융기관 본사에서 내려준 공문을 가지고 판매하고 있다고 봐야죠." (111p)




은행원이 상품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믿는 것도 문제이다.

"내가 가입한 상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를 하고서 그 상품을 가입했을 경우에는 '완전판매'입니다. 고객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가입을 하는 거죠. 하지만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입하게 되는 것을 불완전 판매라고 보면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안 좋은 점은 대충 넘어가고 좋은 점만 이야기를 하죠. 따라서 '굉장히 좋은 상품이 나왔으니까 은행이 나를 위해서 추천해 주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전에 '아, 지금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이 상품을 많이 팔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내가 원하는 상품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보고 자신이 원하는 상품일 때만 가입하는 것이 자신의 돈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114p)

"과거에는 시중은행들이 일부 공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민들을 위한 주택자금을 저리로 대출해 준다든지, 기업들을 위해서 산업자본을 공급해 준다든지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접어들면서부터는 공적인 기능보다는 주식회사적인 기능이, 자신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성격이 더욱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17p)

 

위험한 '후순위채권'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의 상품을 구매했다가 '후순위채권으로 피해를 입은 경우가 많다. '후순위채권'이란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 혹은 도산됐을 경우 채권자들에게 돈을 되돌려주는 순위와 관련되어 있다. 돈은 일반적인 채권 회사와 일반적인 채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돌려주고, 그다음이 후순위채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돌려준다. 쉽게 말해 빚잔치에서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후순위채권이다.

그렇다면 저축은행에서 후순위채권을 파는 이유는 무엇일까? BIS라는 게 있다. 은행 자산의 안전성을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표가 5% 미만이면 경영개선권고, 3% 미만이면 경영개선요구, 1% 미만이면 경영개선명령을 내릴 수 있다. 즉, BIS가 5% 아래로 내려가면 감독기관으로부터 개선권고나 요구, 명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만약 은행이 예금을 빼서 후순위채권으로 돌리면 부채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BIS가 높아지면 '자산이 건전하다'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124p)

 

펀드에 대해 알아야 할 것

"펀드란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자금을 끌어모은 후, 이 돈을 채권이나 주식에 투자해서 그 수익을 나눠 갖는 금융상품이다.

내가 펀드를 사면, 나와 같은 상품을 산 사람들의 돈을 합쳐서 '수탁회사'로 가게 되고, 수탁회사는 돈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자산운용회사에 있는 펀드매니저와 협의를 해 투자를 결정한다. 그러면 수탁회사는 가지고 있던 돈을 주식 등에 투자하고, 거기에서 이익이 나면 투자한 비율대로 수익금을 나눠갖는다." (131p)

펀드 상품을 구매할 때 꼭 '수수료'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실제 펀드운용은 자산운용회사에서 하는데, 은행은 고객에게 판매하는 역할과 그 판매 대금을 잠시 맡아놓는 수탁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에서는 펀드를 판매하면서 수수료를 챙긴다. 상품을 팔 때 수수료를 챙기면 선취, 나중에 챙기면 후취, 구매 후 90일 전에 되팔고 싶으면 그동안 생긴 수익금의 70%를 환매수수료로 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수탁회사와 투자운용회사에도 매번 보수를 주어야 한다. 펀드가 잘 나가서 그나마 50% 이상의 이익을 낼 때에는 그나마 괜찮다. 수익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준다고 생각하면 큰 부담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수익을 내지 못했다고 해서 보수를 안 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핟고 수탁회사와 운용회사가 '수익을 못 냈으니 미안하다'고 하면서 보수를 깎아주는 것도 아니다. 수익이 안 나면 결국 원금에서 주어야 한다." (135p)

여기에 보이지 않는 비용 '주식매매 수수료', 즉 주식을 매매할 때마다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있다. 고객의 돈으로 주식을 샀다가 다시 돈으로 환매하는 것을 매매회전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한바퀴 도는 것을 '회전율 100%'라고 한다.

"자산운용회사가 우리가 모아준 100억 펀드로 주식을 다 샀다가 그대로 팔면 매매회전율은 100%이다. 두 바퀴를 돌면 200%가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평균이 100% 정도인데, 200% 정도만 돼도 미국 펀드 관련업자들은 깜짝 놀란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대형 펀드 중 매매회전율이 1400%, 1500%인 것이 허다하다. 심지어 6200%인 것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회전을 할 때마다 고객이 그 매매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회전율이 높다면 당연히 수수료가 높아지고 이는 투자자의 손실로 돌아온다. 따라서 펀드를 살 때에는 꼭 매매회전율을 따져봐야 한다." (137p)

 

좋은 펀드 고르는 법

1. 펀드의 이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펀드의 이름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다.

"제일 앞에 있는 'M에셋'이라는 것은 자산운용사를 가르키는 말이다. 즉, '이 펀드의 자금은 M에셋에서 운용한다'는 것을 표기한 것이다. 그 다음에 '디스커버리'라는 것이 있다. 이는 일종의 투자전략을 의미한다. 디스커버리란 '유망기업을 발굴해 내서 투자하겠다'는 의미다. 세 번째로 '주식형'이라는 것은 어디에 주로 투자하는지 나타낸다. 이 경우에는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뜻이다. 그 뒤에 붙은 4라는 숫자는 이 펀드의 시리즈 번호라고 할 수 있다. 즉, 1이라고 씌어 있으면 해당 펀드의 첫 번째 시리즈이고 2라고 씌어 있으면 두 번째 시리즈라는 의미이다. 이 숫자가 올라갈수록 나름대로 잘 나가는 인기 있는 펀드라고 할 수 있다. 전체 모집금액이 1조 원이 넘었을 때에만 다음 시리즈가 허용되기 때문에 3이라고 씌어 있으면 이미 그전의 시리즈에서 2조 원에 달하는 펀드를 모집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씌어 있는 A는 수수료의 체계를 의미한다. A라고 씌어 있으면 선취, B라고 씌어 있으면 후취, C는 둘다 없는 경우이다." (139p)




2. 수익률에 속지 말아야 한다.

은행은 펀드를 판매할 때 특정 수익률을 제시하는데 펀드 가입 시에 판매자가 제시하는 수익률은 다 '과거의 데이터'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원금을 모두 날린다고 해도 은행과 자산운용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다

"한마디로 보험은 펀드와 같은 투자상품이 아니다. 따라서 차라리 보험금이 낮은 보장성 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 돈은 투자로 불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보험에 쓸 수 있는 돈이 10만 원 있다면 모두 저축성 보험에 쓰지 말고, 3만 원은 보장성 보험에 들고 나머지 7만 원은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145p)

"보험에 가입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과다한 사업비와 수수료이다. 변액보험의 경우에는 그것이 평균 10%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상당한 비용이 대형 보험대리점의 집기를 사는 비용이나 과다한 광고비로 낭비되고 있다." (146p)

좋은 보험에 가입하려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보장을 받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 한다. 보험에는 '정액보장 상품'과 '실손보장 상품' 있는데 '정액'은 중복보상이 가능하지만 '실손'은 보험을 세 개 들었어도 손해액을 나눠지급하기 때문에 하나만 들면 된다.

 

파생상품은 도박이다

파생상품은 '그 가치가 통화, 채권, 주식 등 기초금융자산의 가치변동에 의해 결정되는 금융계약'이다. 여기에 사과가 하나 있다고 해보자. 이 사과를 이용해 사과식초, 사과파이, 사과잼, 사과주스 등 여러 가지 상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바로 '파생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파생상품에는 선도계약, 선물, 옵션, 스왑이 있다. (152p)

투기성이 있어서 파생상품은 수익률이 상당하지만 실패할 확률이 아주 크다.

 

아이들에게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

EBS 다큐프라임 취재팀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을 대상으로 금융이해력 지수를 측정했는데, 아이들은 신용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신용카드를 어떻게 써야 하며,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력이 낮았다. 또 중학생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부모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인식 조사'를 했는데, 청소년들은 가정 형편을 잘 모르고 있었다. 실제 경제 사정보다 훨씬 풍요롭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는 부모들이 필요 이상의 지출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가정 형편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 금육 교육이 첫걸음이다.

 

금융지능이 있어야 한다

복잡하고 어렵고 위험한 금융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융지능FQ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다 해도 매일 쏟아져나오는 상품들을 다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독립재정상담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재정상담사는 금융상품 제공자(보험회사와 은행 등)을 대신해서 금융상품을 팔게 됩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된 이유는 금융 시장의 미로에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소비자를 돕기 위해서예요." (178p)

우리나라에도 '재무상담사'나 '재무설계사'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대개 특정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고객에게 맞는 상품을 추천하기가 어렵다.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금융자본주의에서 우리는 '투자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칭해져야 한다. 투자는 '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돈을 언제든지 잃을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하고, 전적으로 투자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라는 개념은 상품에 문제가 있을 때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추진중 -_-;;;)

 

불량 식품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다. 불량 금융상품은 온 가족의 삶을 파괴하는 가정파괴범이자 사회악이다. 그러니까 당당하게 요구해도 된다. 금융상품 판매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달라', '모르겠으니 다시 설명해 달라', '이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 상품인지 확실하게 알려 달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본인의 선택이 가져올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우선시해야 할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187p)

 

#

나는 저축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고, 보험은 시어머니와 엄마가 가입해준 게 전부인 '금융지능' 제로인 사람이다. 살면서 재테크 책을 빌려온 적은 있지만 늘 나에게는 금융과 돈, 재테크가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가 있고,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온 지금,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준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를 읽게 된 것이다. 그동안 너무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용어들이 조금은 쉽게 다가오고, 최소 금융업의 탐욕의 희생자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앞으로 이런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반응형
반응형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책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지은 PD가 쓴 <프롤로그>에 자세히 나와 있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희망을 품고 살다 보면 언젠가 상황이 좋아지는 날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저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물가는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고, 가계부채는 절대로 쉽게 호전될 수가 없다. 경기 침체는 앞으로도 수십 년간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좌절할 만한 일이겠지만 바로 이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과연 왜 그럴까?' 하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안정과 행복을 원하는데, 왜 정작 세상은 우울하고 피곤한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것일까? 이것이 바로 당신이 '자본주의의 진실'을 알아야 할 첫 번째 이유이다. 자본주의에 대해서 안다는 것은 복잡한 경제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나와는 상관없는 이론을 배우는 것도 아니다. 나의 행복과 내 가족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이다." (5p)

"자본주의 세상에는 당신이 모르는 돈에 관한 비밀이 있다. '감춰진 진실'은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고, 아무도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는다. 경제기사를 읽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진짜 필요한 실물 경제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내가 잘 모르니 아이들에게도 세상을 똑바로 보는 안목을 길러줄 방법이 없다. 왜 우리는 열심히 일을 해도 점점 살기 어려워지는 걸까? 월급은 잘 오르지 않는데도 물가는 내려갈 줄 모르고 끊임없이 오르기만 하는 걸까? 이 책을 통해 여기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금융위기가 생겨나는지, 왜 계속해서 경기가 침체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8p)

 

 

PART I '빚'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 자본주의의 비밀

 

우리는 학교에서 '수요와 공급에 관한 법칙'을 배웠다. 수요가 많고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비싸지고 수요가 적고 공급이 많으면 가격이 싸진다는 것. 하지만 자장면 값이 떨어지지는 않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는 걸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 공급이 부족하거나 수요가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이 상황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 것이다. 

"'물가가 오른다'는 말은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2000년에 3천 원으로 고등어 한 마리를 살 수 있었다면, 2010년에는 3천 원으로 달랑 고등어 꼬리밖에 사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곧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물가가 오른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졌다'는 말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하락했다'는 것이다." (21~22p)

 

돈은 컴퓨터에 화면에 입력된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돈의 양은 왜 많아졌을까? 우리는 흔히 돈을 은행에 예금하면 은행이 이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은행은 100원이 들어오면 그중 10원만 남기고 나머지 90원은 A라는 사람에게 대출해 준다. 이렇게 되면 나의 통장에 이미 100원이 찍혀 있을뿐더러 A라는 사람의 대출 통장에도 90원이 찍힌다. 이제 A도 90원을 쓸 수 있게 되니, 나와 A가 동시에 쓸 수 있는 돈이 갑자기 190원이 된다. 결과적으로 100원의 예금이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90원이라는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 것이다."(28~29p)

은행이 쌓아둔 10퍼센트의 돈을 '지급준비율'이라고 하며, 이것이 실제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시중에 있는 이유이다. 없던 돈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의도적으로 돈을 늘리는 과정을 '신용창조', '신용팽창'이라고 부른다.  

 

은행의 탄생

17세기 영국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보관하고 이에 대해 보관증을 받았다. 사람들은 금 대신 보관증을 교환하기 시작했고 금세공업자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맡겨둔 금화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았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눈치채자 금세공업자는 받은 이자의 일부를 나눠주기로 하고 위기를 넘기는데, 더 욕심을 내서 있지도 않은 금에 대해 보관증을 남발한다. 금고에 없는 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금세공업자가 엄청난 부를 축적하자 몇몇 부유한 예금주들은 자신의 금화를 모두 가져가버린다. 하지만 오랜 전쟁으로 금화가 필요했던 영국 왕실은 가상의 돈을 만들어 대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 이런 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은행이 설립된 것이다.




"결국 은행은 자기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돈을 창조하고, 이자를 받으며 존속해 가는 회사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사회가 빚 권하는 사회가 된 이유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출 문자가 날아오고, 여기저기 은행에서 대출 안내문을 보내는 이유이다. 고객이 대출을 해가야 은행은 새 돈이 생기기 때문이다."(44p)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는 방법

이자율(기준금리)를 통제한다. 이자율을 낮추면 은행과 사람들이 부담을 덜 느끼고 돈을 많이 빌리기 때문에 시중 통화량이 늘어나고, 이자율이 낮으면 돈을 적게 빌리기 때문에 통화량이 줄어든다. 두번째는 '양적완화'이다. 즉, 돈을 찍어낸다. 이자율을 낮춰 경기 부양하는 것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직접 화폐를 찍어내서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으로 통화량을 늘린다. 하지만 통화량이 늘어나는 속도만 늦출 수 있을 뿐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에 스스로 화폐를 찍어내면서 통화량을 늘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숙명

"인플레이션 후에 디플레이션이 오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이제껏 누렸던 호황이라는 것이 진정한 돈이 아닌 빚으로 쌓아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계속해서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해서 만들어낸 돈이 아니다. 돈이 돈을 낳고, 그 돈이 또다시 돈을 낳으면서 자본주의 경제는 인플레이션으로의 정해진 길을 걷고,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다시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부인할 수 없는 '숙명'이다." (61p)

 

은행 시스템에서의 이자

1. 돈은 한정되어 있다.

2. '이자+실제의 돈'은 '실제의 돈'보다 더 많다.

3. 누군가가 '이자를 내야 한다'고 말하고, 이자를 내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한다.

4. 따라서 돈을 빌렸다면 이자를 내기 위해 남의 돈을 가져와야 한다.

 

돈은 빚이다

"돈은 '빚'이다.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대출'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돈은 '빚'이라는 형태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진다. 누군가 빚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자본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그 '빚'에 대한 이자를 받아 은행은 수익을 챙긴다. '빚'이 없으면 은행도 없다." (69p)




저신용자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은행이 생존을 지속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계속해서 대출을 받는 사람들이 있어야 운영이 되는데, 돈이 많아지고 신용이 좋은 사람들이 대출을 하지 않자, 돈 없는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고 상품을 팔아야 했던 것이다.

 

기축통화가 된 달러

1944년 미국이 35달러를 내면 금 1온스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세계 각국의 통화를 달러에 고정시켰다. (브레튼우즈 협정) 그런데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고 달러 가지가 하락하자 각국에서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금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진 미국이 수세에 몰리자 1971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달러와 금을 바꿔줄 수 없다고 선언했다.('금태환제' 철폐) 미국이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돈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정부기관이 아니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곳은 미국 연방준비은행 FRB이다. FRB는 힘있는 몇몇 은행가들이 만들어낸 민간은행의 연합으로 정부 예산을 쓰지 않고 정부의 감시도 받지 않는다. 미국 정부가 요청하면 돈을 찍어내 미국 정부에 달러를 빌려주고 이익을 얻을 뿐. 한마디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것은 미국 정부가 아니라, 극소수의 금융자본가들이다. FRB은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

가끔 돈이 통장에 찍힌 숫자에 불과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진짜였다. 은행이 내 통장에 찍힌 액수를 전부 보관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우리는 대출과 이자로 먹고 사는 은행의 노예였을 뿐이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건 달러를 발행하는 곳이 정부가 아닌 민간은행이라니! 그것도 자기들 맘대로 금리를 조절하거나 돈을 마구 찍어내는 방식으로  소규모 은행들과 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이익을 추구하고도 멀쩡하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니!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자본주의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단 이런 시스템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로 최대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응형
반응형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왜 미투 사건들과 관련되어 이 책이 회자되는지 알겠다. '82년생 김지영'으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삶속에 남녀차별과 불합리가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때로는 여자인 우리조차 깨닫지 못할 정도로 얼마나 교묘하게 우리를 갉아먹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동안 우울한 책은 읽기 싫어서 나중으로 미뤄둔 책인데, 정신과의사가 김지영에 대해 쓴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오히려 불편함이 덜했다. 아마 작가분이 시사교양프로그램의 작가생활을 하셔서 이런 문체가 뭍어나오는 듯하다.

 

내 삶에 겹쳐지는 '김지영의 삶'
소설은 2015년 서른넷 세 살 많은 남자와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둔 김지영 씨가 이상 증세를 보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김지영 씨는 어느 날 주변사람에게 빙의해 속마음을 내뱉기 시작한다. 시댁에서 같은 증세를 보인 후, 정신과상담을 받게 된 김지영 씨. 이 소설은 그 보고서 형식으로 되어 있다.

공무원 아빠, 주부인 엄마 밑에서 태어난 김지영의 삶은 여느 여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남자인 막내 손주만 예뻐하는 할머니, 학교에서 겪는 일상적인 차별, 대학을 나와 겨우 취업해 직장생활을 하다가 출산과 함께 퇴직. 단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맞게 살고 있을 뿐인데 '맘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삶. 김지영 씨의 성장 과정과 사회생활 이야기를 읽으면서 '맞아. 맞아. 이런 경우 진짜 많지.' '그래, 학교 다닐 때 그랬었어.' 하고 맞장구를 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유독 공감이 되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던 건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봐줄 사람은 없고, 일은 하고 싶은데 시간이 안 맞고, 새로운 걸 배워보려고 해도 원하는 강좌는 모두 저녁 강좌... 간만에 여유를 즐기며 애기 친구엄마들과 차 한잔 하며 깔깔 대고 있노라면 '맘충'인 듯 우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시선. 그래서 우린 요즘 그런 얘길 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고. 분명 같이 결혼하고 같이 집사고 같이 애낳았는데, 여자만 맨날 발 동동거리면서 뛰어다닌다고. 김지영 씨의 언니 김은영 씨가 원하는 대학 대신 교대를 가라고 권하는 엄머에게 하는 말이 참 정곡을 찌른다.
"애 키우면서 다니기에 좋은 직장 맞네. 그럼 누구한테나 좋은 직장이지 왜 여자한테 좋아? 애는 여자 혼자 낳아? 엄마, 아들한테도 그렇게 말할 거야? 막내도 교대 보낼 거야?"
여자들의 이런 삶이 쉽게 나아지지 않으리란 걸 마지막 장이 시사한다. 보고서를 마친 담당의사는 자신이 아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막상 임신으로 그만두는 여직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번거로워지느니 오히려 잘됐다면서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보겠다고 한다.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직원은 곤란하다면서.

 

우리 딸들의 삶은 더 나아질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김지영'이 대한민국을 살아가게 될까. 우리는 과연 우리 엄마 세대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예전보다 집안일이 수월해지고, 남자 형제를 위해 돈을 벌러 생활전선으로 뛰어드는 일이 줄어들었으니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믿어도 되는 것일까. 여성도 직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인식과 그래도 애는 여자가 봐야 한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존하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둘 다 아등바등 잘하려고 애쓰느라 더 힘들어진 건 아닐까.




소설 속 소름끼치는 장면 중 하나는 김지영 씨가 퇴사한 회사에서 벌어진 화장실 몰카 사건이다. 보안 요원이 화장실에 설치한 불법카메라의 사진을 성인들이 보는 사이트에 꾸준히 올렸는데, 이 사이트의 회원인 이 회사 과장이 영상 속의 사람들이 회사 동료임을 안다. 하지만 그는 경찰에 신고하거나 피해자들에게 알리기는커녕 다른 사원들과 사진을 공유했다. 이 사실이 여직원들 귀에 들어가면서 회사를 조사를 받는다. 그런데 남자직원들의 대응이 가관이다.

"그런데 조사받은 남자 직원들이 우리한테 너무했대. 자기들이 몰카를 설치한 것도 아니고, 사진을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나 볼 수 있는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좀 본 거 가지고 성범죄자를 만들려고 한다면서. 사진 유포했잖아. 범죄를 방조했잖아. 근데 그게 잘못인 줄도 몰라. 완전히 개념이 없더라니까."

하,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태만인 대한민국에서 우리 딸들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씁쓸하다.

 

소설 속 각종 차별과 편견들
"언니는 분유 맛없어?"
"맛있어."
"근데 왜 안 먹어?"
"치사해서."
"응? 치사해서 안 먹어 절대 안 먹어."
김지영 씨는 치사하다는 단어의 뜻을 정확히 몰랐지만 언니의 기분은 알 수 있었다. 할머니가 혼내는 게 단순히 김지영 씨가 더 이상 분유 먹을 나이가 아니라거나 동생 먹을 게 부족해진다거나 하는 이유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24~25p

 

차승연 씨는 항상 특별 대우 같은 건 필요 없으니 여학생들도 똑같이 일 시키고 기회도 똑같이 달라고, 점심 메뉴 선택 같은 것 말고 회장을 시켜 달라고 말했다. 그러면 대부분 대충 웃으며 그래그래, 하고 넘겼는데 9년 동안 가장 열심히 동아리에 나오고 있는 박사 과정 남자 선배 하나가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내가 몇 번을 말하니? 여자는 힘들어서 못해요. 너희는 그냥 동아리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우리한테 힘이 되는 거야."
"저 선배한테 힘 돼 주려고 나오는 거 아니거든요? 기운 없으면 보약 한 채 해 드시든가. 내가 진짜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악착같이 나와서 여자 회장 꼭 보고 말 거야." -91p

 

"아, 됐어.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남에게 억지로 권하지는 않고, 후배들에게 밥을 잘 사 주지만 되도록 함께 먹지는 않는 선배였다. 태도가 단정하고 깔끔해서 김지영 씨도 항상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설마설마 싶어서 귀를 쫑긋 세우고 더 유심히 들었는데, 아무래도 그 선배의 목소리가 맞았다. 취했을 수도 있고, 쑥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친구들이 괜한 짓을 할까 봐 더 과격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김지영 씨의 처참한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일상에서 대체로 합리적이고 멀쩡한 태도를 유지하는 남자도, 심지어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에 대해서도, 저렇게 막말을 하는구나. 나는, 씹다 버린 껌이구나. -93p

 

김은실 팀장은 4명의 팀장 중 유일한 여자 팀장이었다. 초등학생 딸이 하나 있는데,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며 육아와 가사는 완전히 어머니께 맡기고 본인은 일만 한다고 들었다. 누군가는 멋지다고 했고 누군가는 독하다고 했고 누군가는 뜬금없게도 남편을 칭찬했다. 처가살이가 시집살이보다 고되다는 둥 요즘은 장서 갈등이 사회 문제라는 등 하며, 장모를 모시고 사는 걸 보면 만난 적은 없지만 김은실 팀장의 남편은 좋은 사람일 거라고 했다. 김지영 씨는 17년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머니가 미용 일을 하러 나간 동안 잠깐씩 막내를 봐주셨을 뿐 삼 남매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등의 돌봄 노동은 전혀 하지 않으셨따. 다른 집안일도 거의 안 하셨다. 어머니가 차린 밥을 드시고, 어머니가 빨아 놓은 옷을 입고, 어머니가 청소한 방에서 주무셨다. 하지만 아무도 어머니에게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다. -111p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데?"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뭘 잃게 돼?"
"나, 나도..... 나도 지금 같지는 않겠지. 아무래도 집에 일찍 와야 하니까 친구들도 잘 못 만날 거고. 회식이나 야근도 편하게 못할 거고. 일하고 와서 또 집안일 도우려면 피곤할 거고. 그리고 그, 너랑 우리 애랑, 가장으로서..... 그래, 부양! 부양하려면 책임감도 엄청 클 거고." -136~137p

 

회사에서는 임신한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출근과 퇴근 시간을 30분씩 늦출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는데, 김지영 씨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마자 남자 동기가 대뜸 말했다.
"와, 좋겠다. 이제 늦게 출근해도 되겠네."
그럼 너도 계속 구역질하고, 제대로 먹지도 싸지도 못하면서, 피곤하고, 졸립고, 여기저기 아픈 상태로 지내든지. -138p

 

"그놈의 돕는다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아니야?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그리고 내가 일하면, 그 돈은 나만 써?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144p

 

"예전에는 방망이 두드려서 빨고, 불 때서 삶고, 쭈그려서 쓸고 닦고 다 했어. 이제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다 하지 않나? 요즘 여자들은 뭐가 힘들다는 건지."




더러운 옷들이 스스로 세탁기에 걸어 들어가 물과 세제를 뒤집어쓰고, 세탁이 끝나면 다시 걸어 나와 건조대에 올라가지는 않아요. 청소기가 물걸레 들고 다니면서 닦고 빨고 널지도 않고요. 저 의사는 세탁기, 청소기를 써 보기는 한 걸까. -149p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165p

반응형
반응형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미투는 안희정 전지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차기 대선주자로 각광받았던 사람이고, 이미지도 나쁘지 않았는데 저 사람마저 가해자라니. 하지만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건 단지 안희정 전지사가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아니라, 비서의 고백이 어딘가 모르게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건 그냥 불륜이 아니냐고, 왜 거절하지 못했느냐고, 한 번이면 그렇다치더라도 어떻게 여러 번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놔둘 수가 있냐고. 나 또한 그녀의 편에 서서 응원해줘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이는 '그루밍'

그런데 <어쩌다 어른>에 나온 손경이 강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어쩌면 안희정 전지사의 비서는 '그루밍'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루밍'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길들여 성폭력을 용이하게 하거나 은폐하는 모든 과정을 말한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고르고, 특별히 잘해주거나 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쌓으며 성적인 관계로 만들어나간다. 가해자의 덫에 걸린 피해자는 고립되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것이다.


 

사과는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것

특별히 인상에 남았던 이야기는 수학여행에서 친구들이 강제로 바지를 벗기고 사진촬영을 당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이야기다. 담임선생님의 지시로 형식적인 사과를 받았지만 자기는 사과를 받지 않았다고. 왜 자기가 어떤 고통을 겪는지도 모르면서 일방적으로 사과를 하면 다냐고. 진심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그 아이는 수학여행 이후 자는 내내 바지를 쥐고 잔다고 했다. 꿈을 꾼다고 했다. 가해자 아니가 나와서 무릎 꿇고 사과를 했지만 그 아이는 반아이들 전부 다 가해자라고 했다. 왜 너희들은 사과 안 해? 아이는 꿈을 꾸게 되지 않으면 그때 사과를 받겠다고 했다.
아이가 그렇게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나왔던 건 두 목소리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때 들렸던 목소리. "그러면 안돼!" "하지마!" 손경이 강사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위드유라고 했다. 팻말을 드는 게 위드유가 아니다. 직접 개입해서 피해자를 돕는 게 위드유이다.

 

딸 가진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할

방송 내내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보았다. 딸을 가진 엄마가 되자, 이런 문제가 더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사내아이들을 잘 교육시키는 게 중요하단 생각을 하지만, 정작 사내아이들의 엄마는 내 아이는 남자니까 괜찮다는 생각을 가진 게 우리 현실이다.


얼마전 서초구에 있는 유치원에서도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6세 남자아이가 같은 반 여자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부끄러운 놀이'를 시킨 것이다. 팬티를 벗고 성기를 들어올려 보여주는. 뒤늦게 이사실을 안 여자아이의 엄마가 유치원에 항의했지만, 남자아이의 부모 측은 유아기에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사과조차 하지 않았고, 유치원 원장의 대응도 소극적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옆에 있는 사람들이 도와주세요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위드유가 아닐까. 술을 따르라고 했을 때 "제가 따르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남자직원, 결재를 받을 때마다 의도적인 손 접촉이 불쾌해서 여직원끼리 단합하여 결재를 받으러 간다든가, 성희롱으로 의심되는 술자리에서 당황하는 동료 대신 촬영을 한다든가 하는. 술취한 손님의 수상한 낌새에 블랙박스를 안쪽으로 돌려 촬영한 택시기사 아저씨 등.

 

성폭력은 성이 아니라, 폭력일 뿐입니다.

 

자꾸 이 말이 귓가에 맴돈다.

반응형
반응형

 

<한끼 줍쇼>는 첫회부터 거의 빼놓지 않고 보는 애청 프로그램이다. 요즘에는 드라마를 많이 보지 않고 <윤식당><한끼 줍쇼><효리네 민박> 같은 리얼 예능을 많이 본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보면서 많이 울고 웃었는데 요즘은 이런 프로그램에서 주는 잔잔한 감동 같은 것들이 더 마음에 많이 스며든다.
그동안 <한끼 줍쇼>에는 참 많은 집을 방문했는데, 밥 한 끼를 같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정이 들고 식구가 되어가는 모습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함을 선사했다. 처음에는 그날 한 끼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초점을 두고 긴장감을 즐기며 봤다면, 이제는 그들이 나누는 진솔한 이야기에 기대감을 갖고 보게 된다.
그런데 이번 <한끼줍쇼> 74회에 나온 부부는 정말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봤다. H.O.T의 강타가 찾아간 그 집은 결혼 6년 차를 맞는 신혼부부의 집이었는데, 아내분의 긍정 마인드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녀는 현재 임신 중이었는데 계속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시험관을 해서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벽에는 목표와 꿈이 쓰여 있고, 미나리를 재료로 한 요리들이 다양하게 올라온 밥상에서 정금이 엄마(아가의 태명이 '정금'이라고 한다. 순수한 금이라는 뜻이란다.)는 드디어 원하던 아기를 갖은 사람답게 행복해 보였다. 유쾌한 웃음소리와 재치는 원래 타고난 것인 듯했다. 그런데 임신 말고도 정금이 엄마에게는 힘든 과거가 있었다. 결혼 후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다행히 초기라서 가슴 하나만 절제하고 괜찮았다면서 웃는 정금이 엄마는 그때는 어릴 때라 수술하면 괜찮은가보다, 그래도 하나만 떼어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단다. 가슴 한쪽을 절제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고 괜찮은 일은 아닐 텐데 정금이 엄마는 '지금 현재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끔 같은 상황을 겪고도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나였다면 유방암에 걸려 가슴 한쪽을 도려낸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런 상황을 원망하고, 할 수 있는 것들조차 포기해버렸을 것 같은데..... 정금이 엄마는 수술하고 얼마되지 않은 상태에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를 갔다고 한다. 꿈을 위해서.


정금이 엄마는 생활비를 80만원 안에서 쓰기 위해 매일 가계부를 적고 일주일에 한번 회의를 한다고 했다. 결혼은 희생이란 말도 했다. 남편이 먹고 싶어하는 미나리를 대충 다듬고 쉴 수도 있지만 꼼꼼하게 다듬는 것 또한 희생이라고. '희생'이란 말을 몸서리쳐지게 싫어하는 나도 그 말에 공감이 됐다. 결혼은 '나의 즐거움과 안락함'만을 생각해선 결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어쩌면 정금이 엄마가 가진 긍정은 타고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는 그녀의 성장 과정을 모르니까. 하지만 긍정적인 기질이 부족한 사람도 늘 선택은 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상황에서 나는 불행을 택할 것인가, 행복을 택할 것인가. 짜증을 낼 것인가, 감사할 거리를 찾을 것인가. 나보다 어린 사람이지만 그녀가 가진 '긍정 에너지'와 '현명함'을 배우고 싶다, 닮고 싶다. 나도 같은 상황에서 밝은 면을 선택하고 밝은 면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주변에 전파하고 싶다.

반응형
반응형

 

 

 

음, 한창 베스트셀러였을 때 귀여운 보노보노 부채가 갖고 싶기도 하고, 겸사겸사 책을 샀는데 솔직히 좀 실망스러웠다.

나의 감각이 좀 이상한 건지, 작가의 이야기와 보노보노의 철학이 섞이지 않는 느낌이 강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억지로 짜맞춘 듯한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노보노>라는 만화 자체는 삶을 깊이 통찰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곱씹을수록 아 이건 명언이다 싶은 말도 많았고.

 

#1

늘 재미를 좇는 너부리는 숲속 동물들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대화를 나누며 웃는 게 이해가 가질 않는다. 썰렁한 장난을 반복하면서 킬킬대고, 중요하지도 않은 이야기에도 심히 공감하는 보노보노와 포로리를 보고 왜들 저라나 싶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해 포로리는 어른스러운 답을 내놓는다. 다들 쓸쓸해서 그런 거라는 얘기다.

 

너부리: 나 좀 이해 안 가는게,

          어제 뭘 했다느니 오늘 날씨가 어떻다느니.....

          그런 얘길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포로리: 아니야. 다들 그렇게 재미있는 일만 있는 게 아니라고.

          만약 그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만 해야 한다면

          다들 친구 집에 놀러 와도 금방 돌아가버리고 말 거야.

보노보노: 그건 쓸쓸하겠네.

포로리: 쓸쓸하지! 바로 그거야, 보노보노!

          다들 쓸쓸하다구. 다들 쓸쓸하니까

          재미없는 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구.

 

#2

하루는 끊임없이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재미를 궁리하느라 피곤해하는 홰내기를 아빠가 부른다. 아빠는 잠깐 앉아보라면서 홰내기의 등을 긁어주겠다고 한다. 갑자기 왜 등을 긁어주겠다는 건지 의아해하는 홰내기에게 아빠는 이런 말을 한다.

 

홰내기는 항상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생각하잖아.

그래서 좀 피곤한 거 아닐까?

가끔은 이렇게 등 긁는 것만으로도 놀이가 된단다.

 

#3

야옹이 형은 특별한 일이라고는 없는 동네를 그저 걷는 걸 즐긴다. 포로리는 그런 야옹이 형이 신기해서 하루는 몰래 뒤를 밟아보리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 다녀봐도 야옹이 형은 별다른 일을 하지도 않고 그냥 걷기만 한다. 딱히 재미있어 보이지도 않는 짓을 왜 계속하는지 궁금해하는 포로리에게 야옹이 형은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다는 말을 한다.

 

포로리: 왜 아무 일도 없는 게 좋아?

          그냥 걷기만 하는 건 지루해 보이는데.

야옹이형: 응, 지루해.

             난 그저 아무 일도 없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걷는 셈이야.

             걷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거든.

             '아! 오늘도 아무 일도 없었구나!' 싶어서.

 

야옹이 형은 이상한 말만 한다고 생각하며 포로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부모님의 모습에 처음으로 신기한 생각이 든다.

 

아, 아무 일도 없다는 건 좋은 거구나.

 

#4

그동안 포로리는 매년 아빠와 꽃구경을 갔었다. 그런데 올해는 편찮으신 부모님을 돌보느라 지쳐서 꽃구경을 가기로 했다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만다. 그러자 서운해하는 아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진 포로리는 지금이라도 꽃구경을 가자고 나서고, 아빠는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함께 걸어가는 길에 부자가 나누는 대화가 마음을 파고든다.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어기는 거 아냐.

포로리: 어긴 게 아니라 잊어버린 거예요.

포로리 아빠: 노인네들하고 한 약속은 잊어버리는 거 아냐.

                 젊은이들한테는 다음 달, 내년도 있겠지만

                 노인네들에게는 지금뿐이라고.

 

#5

무언가 할 수 있다. 무언가 할 수 없다.

다들 분명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겠지.

모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찾고 있다면

우리들은 뭐랄까.

굉장히 부지런한 거 아닐까?

 

 

#6

봄은 저쪽에서 천천히 천천히 오는 거구나.

달팽이는 걷는 게 늦구나.

그럼 아주 오래전부터 계속

내가 여기 여기까지 걸어온 거구나.

역시, 천천히 오는 건 굉장해.

 

#7

하루는 홰내기가 놀러 와서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다른 친구들은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 말에 늘 시니컬한 너부리는 또 한번 시비를 건다.

 

홰내기: 자, 너희는 뭐가 되고 싶니?

너부리: 되고 싶다니 뭐가? 딱히 되고 싶은 것 따윈 없어.

홰내기: 뭐? 되고 싶은 게 없어?

너부리: 난 나야. 지금 이대로의 내가 좋다고.

          너는 지금 네 자신에게 불만이 있는 거야. 맞지?

          그러니까 뭐가 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하는 거라고.

          안 그래?

 

보노보노: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안 좋은 거야?

너부리: 당연하지. 되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지금의 자신이 싫다는 거잖아.

 

#8

누구에게나 아무도 모르는 모습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내 모습을 나만 알고 있는 거라면

나, 대단하네.

나, 대단하네.

 

보노보노, 참 대단하다.

많은 걸 알고 있어. :)

반응형
반응형

 

다울작은도서관에서 이 포스터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가 신청을 했다. 하지만 7세 이상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라 참가가 어렵다고 했다. 실망했지만 달리 방법이 있나. 그냥 못 보나 보다 생각했는데, 자주 봐서 낯이 익은 사서가 말을 건넸다. "혹시 이거 신청하셨어요?" 신청하려 했으나 나이가 안 되서 못했다고 하자 이제 가능하다고 한다. 4세 아이의 아버지께서 매일 전화를 걸어서 꼭 듣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부탁하셨고, 매번 부탁하시니 거절하기가 어려워 결국 4세 아이를 받았다고. 4세를 받았으니 5세를 안 받을 수가 있나.

 

우여곡절 끝에 참석하게 된 거라 맘이 들뜬 우리는 제일 먼저 도착해 작가님을 기다렸다. 물론 <유기견 영남이> 책도 미리 읽어보았고, 유기견이 무엇인지, 강아지는 한번 키우면 평생 책임을 져야 한다는 교육까지 단단히 시켰다. <유기견 영남이>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강아지와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민지는 강아지만 데려오면 마냥 귀엽고 즐거울 줄 알았지만, 영남이는 가까이 다가오기는커녕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신발을 물어뜯거나 똥오줌을 못 가린다. 밤이면 크게 짖는 통에 엄마 아빠는 다시 보내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하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서로를 이해하게 된 민지네와 영남이는 드디어 가족이 된다는 이야기.

 

 

유진 작가님은 우선 그림책의 이야기를 인형극으로 엮어 보여주셨다. 책은 민지네의 시선으로 진행이 되는데, 인형극에서는 영남이의 속마음이 어떤지 알려주기 때문에 왜 쓰레기통을 뒤지고 아무 데나 똥을 쌌는지, 밤에는 왜 짖었는지 이해할 수가 있다. 영남이는 실제 작가님이 키우고 계신 강아지라고 한다. 자신이 경험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림책을 쓴 것인데, 막상 강아지를 데려오면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인형극이 끝난 후에는 '실제 영남이'의 성장과정을 담은 사진도 보여주시고, 그림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알려주셨다.

 

작가의 발견 마지막 순서는 영남이가 민지를 만나러 가는 '게임'이었다. 출발점에 영남이가 서 있고 도착점에 민지가 서 있는 길 그림을 한 장씩 나눠주고, 한 명이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펜을 쥐면 다른 한 명이 눈을 감은 사람의 왼손을 쥐고 조종하는 식으로 도착점에 도달해야 하는 게임이다. 게임이 끝나고 나선 출발점과 도착점을 찍고 그 사이를 마음대로 이어 그려서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작가님은 어릴 때 이런 게임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다음날 자신과 비슷하게 게임을 만들어오리라 생각했지만, 만들어온 친구는 없었고, 다른 반에 소문이 나서 게임을 달라고 온 친구들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평생 콘텐츠의 소비자로 살기 쉬운데, 여기에 온 친구들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번 콘텐츠를 생산하는 경험을 해보면 다음에 도전하기가 쉬우니 그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실제 초등학교 아이의 아버지여서 그런지 아이들을 대하는 자세가 아주 편안하고 친근했다. 대충 인형극 보고 그림 하나 그리고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1시간 반 정도의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는 것에만 그치면 그건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는 이야기들과 연관지어지면 특별한 추억이 된다. 좋은 추억 만들어주신 유진 작가선생님, 감사합니다. :)

 

반응형
반응형

 

 

예고편에서 울리던 박정현의 목소리와 악동의 수현이 나온다고 해서 기대한 <비긴어게인2> 오늘은 아쉽게도(?) 김윤아, 이선규, 로이킴, 윤건 팀이 나왔지만 그래도 참 좋았다. <비긴어게인>이 좋았던 이유는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음악이 녹아드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어떤 노래도 관객이 된 듯 집중이 되었고 가슴을 어루만졌고 감동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이 간 곳이 포르투갈이다. 첫 배낭여행으로 간 곳이 유럽이었는데, 그중 계획에도 없이 가게 된 곳이 헝가리와 포르투갈이었다. 영상에선 아주 아름다운 곳처럼 보이지만, 내가 갔던 당시 포르투갈의 이미지는 '낙후된 유럽'이었다. 분명 리스본이 수도였는데 건물 외벽 곳곳이 흉측하게 드러난, 낡고 음산한 건물들이 많았다. 여행 막바지이기도 해서 별 기대 없이 별 흥미 없이 특별한 것도 하지 않고 지낸 곳이 포르투갈이다.

 

 

하지만 기억에 남는 건 로카곶이다. 유럽의 서쪽 끝.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로 유명한 곳. 유럽의 서쪽 끝이라서 좋았다기보단 로카곶으로 가는 여정이 좋았다. 한쪽은 마을, 한쪽은 바다가 보이는 기차도 좋았고, 구불구불 너른 언덕 같은 곳을 달리는 버스도 좋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날씨가 따듯했다. (방송처럼 나도 1월쯤 그곳에 갔다.) 시골마을을 여행하듯 마음이 편했던 곳이었다.

 

 

김윤아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세월호 사건을 겪었을 때 무력감을 느꼈던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애란이 세월호 사건을 겪은 후에 쓴 소설이 <바깥은 여름>인데, 작가들이 겪었을 죄책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윤아 또한 할 수 있는 게 음악밖에 없음에 마음의 짐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강>이라는 노래를 통해 마음을 전했고, 그 마음은 언어가 다른 그들에게도 전해진 듯하다. 그녀의 말처럼 음악이 주는 힘은 참 강하다.

 

 

또다시 세월호를 떠올렸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가 마침 임신 중이라 내게 다가오는 사건의 무게감은 훨씬 더 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앞으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의 참담함, 꽃 같은 아이들이 피어 보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었다는 사실은 아마 나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것이다.

 

 

음악이 모든 것을 치유해주진 못하겠지만, 음악이 많은 것을 치유해주는 것 또한 부인 못할 사실이다. 너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울리는 그들의 목소리와 음악을 좀 더 많이 듣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 편에 나올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또 어울리는 형태로,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멋진 화음을 만들어낼 것이다.

 

 

반응형
반응형

 

칼데콧 상은 미국어린이도서관협회에서 그해 가장 뛰어난 그림책을 쓴 사람에게 주는 문학상으로 '그림책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영어로 되어 있어야 하고 미국인이거나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준다는 제한이 있다.  개인적으로 '칼데콧 상'을 받은 그림책을 선택하면 실패하지 않을 확률이 크다고 생각한다.

내가 갖고 있는 세 권의 그림책은 전부' 칼데콧 아너 상'을 받은 작품인데, 칼데콧 상은 칼데콧 메달과 칼데콧 아너상이 있다고 한다. 칼데콧 메달이 최우수상에 해당하며, 칼데콧 아너는 1~5권 정도의 우수작에게 수여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특별한 구분 없이 사용되는 것 같다.

 

깊은 밤 부엌에서/모리스 샌닥/시공주니어

<괴물들이 사는 나라>로 유명한 모리스 샌닥. <깊은 밤 부엌에서>는 한밤중 요란한 소리에 잠이 깬 '미키'가 빵 만드는 부엌으로 떨어져 미키 빵이 될 뻔하다가, 반죽으로 비행기를 만들어 제빵사 아저씨들에게 우유를 부어 주곤 다시 돌아와 잠을 청하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한번쯤 꿈꿔봤을 만한 이야기로 상상력을 자극한다. 미키가 부르는 노래도 라임이 딱딱 맞고, '미키' '밀크' '밀키웨이'라는 말을 사용해 비슷한 말이 주는 재미를 선사한다.

 

알록달록 동물원/로이스 엘러트/시공주니어

 

"우리는 모양을 만들고 색깔을 칠해서 많은 동물들을

만들 수 있습니다. 동물들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머리, 귀, 입, 코만 뚜렷하게 만들면 되지요.

여러분도 동물들을 많이 알고 있나요?

이 책에 나와 있지 않은 동물들을 만들어, 여러분만의

알록달록 동물원을 꾸며보세요."

 

이 책에 나오는 문장은 이게 다이다. 책은 별, 원, 정사각형, 삼각형, 직사각형, 하트, 타원, 마름모, 팔각형, 육각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동물들을 소개한다. 첫 장을 펼치면 동그라미, 세모, 네모로 만들어진 호랑이 얼굴이 나타나고, 동그라미가 뚫린 책장을 넘기면 오른쪽에 쥐의 얼굴이 나타난다. 이번에 네모가 뚫린 책장을 넘기면 오른쪽엔 여우 얼굴이 나오는 식이다. 한 장씩 넘기면서 각각의 도형 이름을 맞추고, 동물의 얼굴을 보면서 이름 맞추기를 하다 보면 책이 끝난다. 단순한 도형 몇 가지와 알록달록한 색상의 조합으로 도형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책.

 

나랑 같이 놀자/마리 홀 에츠/시공주니어

 다른 책들에 비해 서정적이랄까. 그림도 어찌 보면 일본 그림책에서 많이 볼 법한 스타일이고. 한 소녀가 들판으로 나가 만나는 동물들마다 적극적으로 다가가 말을 건다. "누구누구야, 나하고 놀래?" 메뚜기도, 개구리도, 거북도, 다람쥐도, 어치도, 토끼도, 뱀도 모두 도망가 버린다. 아이는 "아무도, 아무도, 나랑 놀려고 하지 않아요."라면서 시무룩. 그런데 연못가 바위에 앉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자 메뚜기가 돌아와 곁에 앉는다. 거북도, 다람쥐도, 토끼도........ 어느새 도망 간 동물들이 내 주위에 모이고, 아기 사슴이 다가와 아이의 뺨을 핥아주자, 아이는 행복해한다. "모두들 나랑 놀아주니까!" 

동물들이 하나씩 도망가고, 하나씩 모여 드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그림책. 고양이나 강아지만 보면 큰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다가가놓곤 가버렸다고 서운해하는 우리 아이의 모습도 오버랩된다.

반응형

+ Recent posts